한반도 지진 대비의 길

과거 지진 단층 조사, 재앙을 대비하는 ‘과속 방지턱’

최진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재해연구본부장

지진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가장 강력한 자연재해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안전을 위해 지진과 관련 현상을 모니터링하고 예측하는 기술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지진 예측에 반복적으로 성공한 기술은 없으며, 과학적 이론에서 꼭 필요한 ‘증명’이 되지 않아 여전히 지진 예측은 현존하는 가장 큰 과학 난제 중 하나다. 그렇다면 지진 대비는 불가능한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일상에서 찾을 수 있다. 운전을 하다 보면 학교 근처에서는 자연스럽게 서행을 하게 된다. 속도단속 카메라가 눈에 띄고, 과속방지턱도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치들은 사고를 예측하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있을 수 있는 사고를 대비하는 것일까. 분명한 점은 이러한 장치들은 사고에 취약한 지점에 설치된다는 것이다. 지진 또한 발생 시점에 대한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지진에 대비하는 방법 중 하나로 수많은 단층 중 최근에 지진을 일으켰던 단층을 탐지하고 해당 단층에 기록된 과거 지진을 조사하는 기법이 있다. 이를 ‘고(古)지진’ 연구라 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최근’은 지구 관점의 시간 스케일이며, ‘옛날(古)’은 인류 관점의 시간인데, 이를 종합해 현재로부터 대략 수십만년 전까지의 시간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선사시대에 발생했던 지진의 기록은 과연 어디에 남아 있을까. 바로 우리가 밟고 서 있는 땅속의 퇴적층에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차곡차곡 쌓인 퇴적층을 살펴보면, 먼저 쌓인 아래쪽의 지층은 지진을 겪어 뒤틀어지거나 변형되어 있는 반면, 나중에 퇴적된 위쪽의 지층은 지진을 겪지 않아 바르게 쌓여 있다. 바로 이것이 고지진 기록이다. 따라서 고지진학자들의 가장 일반적인 조사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땅을 수m 파고 내려가는 굴착 조사이다.

여기서 고지진 연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과학적 이론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규모 6 이상의 대형 지진만이 지표와 가까운 퇴적층 변형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중소 규모 지진은 흔들림만을 가져올 뿐 땅이 갈라지는 현상은 동반하지 않는다. 2016년 경주 지진이 대표적이다. 고지진 연구를 통해서는 과거에 발생한 규모 6 미만의 지진에 대한 조사는 불가능하며, 대형 지진의 기록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지진을 겪은 지층과 겪지 않은 두 지층의 퇴적된 시간(지질연대)을 분석하면 해당 지진이 발생했던 시간 범위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진이 일어난 곳에서 다시 지진이 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즉, 지진은 일부 단층이나 단층 구간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을 전제로 지난 수십만년 전부터 발생한 대형 지진들의 시공간적 이력을 조사해 지진재발모델을 정립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 지진의 특성, 즉 규모와 위치, 주기 등을 추론하는 것이 바로 고지진 연구이다.

여전히 미래 지진의 발생 시기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만, 수십년 또는 수백년 내 특정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확률을 평가하는 ‘지진재해평가’ 기술이 개발돼 활용 중이다. 단층을 중심으로 한 지진의 발생 메커니즘, 즉 탄성반발이론이 밝혀진 것이 20세기 초이고, 고지진 연구는 고작 50년 정도의 역사를 지녔다. 그럼에도 최근 같은 추세라면 가까운 미래에는 지진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 보호구역에 과속방지턱을 두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고지진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 미래 지진의 대비책으로 삼아야 할 시점이다.

최진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재해연구본부장

최진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재해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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