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집에 온 날, 청바지 차림은 아니지만 예쁜 갈색 강아지였다. 첫 미용을 한 날 흰 강아지가 되었다. 그사이 털갈이를 한 모양이다.
그로부터 19년이 흘렀다. 여전히 ‘그’는 건강하게 내 곁을 지키고 있다.
그의 이름은 똘이. 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강아지 캐릭터 ‘칠 가이(chil guy)’ 이야기를 들었다. 갈색 곰돌이 옷을 입고 있는 똘이와 칠 가이가 겹치며 슬며시 웃음이 났다.
‘또 외래어야?’란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호기심에 이것저것 찾아봤다.
‘칠 가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롭고 느긋한 사람을 일컫는다고 한다. 똘이는 강아지일 때는 성격이 급하고 날카로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나와는 달리 똘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한결 느긋해졌다. 요즘 사람 말로 칠 가이가 된 것이다.
이것저것 보던 중 ‘chil chil(칠 칠) 맞게 뭐야 이게’에 눈길이 멈추었다.
쓴웃음과 함께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언젠가 후배에게 ‘칠칠맞게 일한다’고 한 적이 있다. 순간 분위기가 험악해지면서 차가운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급기야 후배는 책상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갑자기 말하는 습관과 경상도 특유의 거친 억양 때문에 후배는 자신을 질책하는 말로 알아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적 부모님에게 ‘칠칠맞은 놈’이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 대부분 내 잘못을 탓할 때 한 말이다. 조금 머쓱해지기는 했지만 후배와는 바로 오해를 풀었다.
후배가 비난으로 오해한 ‘칠칠맞다’는 ‘성질이나 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를 뜻하는 말이다. ‘칠칠맞게 일한다’는 일을 알차게 잘한다는 뜻이었다. 제대로 빈정대려면 ‘못하다’를 붙여야 한다.
스치듯 떠오른 기억 속에서도 ‘chil chil 맞게 뭐야 이게’가 문법적으로 맞는 말일까부터 따진다.
어쩔 수 없는 꼰대인가, 투철한 직업정신인가. 말놀이처럼 즐기는 ‘인터넷 밈’도 옳고 그름을 가리고 있으니 칠 가이가 되기는 힘들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