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다 같다는 말 하지 마세요.” 12·3 계엄 이후 인문학 연구자들의 작은 공부모임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게. 그때는 윤석열이 계엄을 할 줄 몰랐지”라며 이어지던 말들 사이에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다수가 윤석열이 탄핵되면 민주당이 집권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한가. 2017년 박근혜 탄핵 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 광장은, 시민들은 무엇을 기대했었나. 5·18 유가족 앞에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대통령’ ‘비정규직 제로시대’ ‘저녁이 있는 삶’을 호기롭게 외치던 것과 달리 어떤 정책이든 빠르게 포기하거나 절충했다. ‘공약대로’ 추진하되, 여러 우회로를 만들어 제도를 내부로부터 허물어버렸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겠다더니, 최저임금을 올리는 대신 산입범위를 확대해 ‘올랐지만 오르지 않은’ 월급봉투를 들고 어리둥절해했던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를 어떻게 기억할까.
2017년 법 개정으로 주 52시간 상한제를 공식화했지만 이 역시 재계 반발로 다양한 예외들을 만들었다. 함께 도입한 선택적 근로시간제, 탄력근로제만으로 기업들은 52시간의 허들을 가볍게 넘었다. 대표적으로 재난 발생 등의 경우 제한적으로 용인되던 ‘특별연장근로’ 제도는 2022년 지침을 개정해 일반 기업의 업무량이 많은 경우 등으로 폭넓게 허용했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년간 43만시간 넘는 특별연장근로를 실시했다.
누가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들에 장시간 몰아치기 노동의 ‘달콤한 맛’을 보게 했나. 누가 ‘주 52시간 상한제’의 예외를 폭넓게 허용했나. ‘줬다 뺏는 정부’, 민주당 정부의 ‘위선’에 대중은 환멸을 느꼈다. 촛불 ‘이후’ 노동은 가장 빠르게 광장에서 밀려났고, 민주당이 수호한다던 민주주의는 공장 담벼락 앞에서 멈추었다. 그 지점에서 윤석열의 노골적인 노동탄압이 시작됐다.
이재명의 ‘반도체특별법’ 강행은 기시감이 든다. 윤 정부는 출범 직후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에 공을 들였다. 그 결과 경기·서울·대구·부산 등에서 290여개 마트 소속 노동자 2만3000여명의 주말 휴식권이 박탈됐다. 노동자들은 “한 달 열 번의 주말 중 고작 두 번 쉬는 휴업일마저 대기업의 이윤을 위해 내놓으라는 정부”를 규탄한다.
‘응원봉 광장’이 열린 와중에 이재명은 ‘몰아서 바짝 일하자’며 이 특별법에 손을 들었다. 좀처럼 오르지 않는 지지율로 우클릭을 선택했나? 윤 정부의 마트 의무휴업 폐지, 69시간 추진에 대해 지지율 만회를 위한 ‘노동 때리기’라며 비판했던 것은 당시 민주당이었다. 윤 정부 내내 ‘귀족노조’ 운운하며 노동자 내부를 갈라치더니, 이재명은 일부 상위 고소득 전문직의 노동시간 규제를 푸는 것이라며 노동자를 가른다.
그럼에도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다르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모든 ‘소소한’ 문제는 “일단 뒤로” 남겨놓고, 지금은 극우화에 맞선 정치 아래 모여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모든 문제가 함께 혼합되지 않는 ‘민주주의 수호’란 얼마나 약해빠진 것인지 2017년 이후 더 위태로워진 우리의 삶과 정치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