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들어 어선 사고로 26명 사망 또는 실종…기후변화·무리한 조업·안전 불감 ‘총체적 난관’

지난해 침몰 사고만 17건, 예년의 ‘8배’

2월 들어 보름 새 26명 사망 또는 실종

적은 어획량, 경비 등 부담에 무리한 조업

서귀포 선적 근해연승어선 재성호가  지난 12일 오후 7시56분쯤 서귀포시 표선면 남서방 약 12㎞ 해상에서  전복됐다. 해경 제공

서귀포 선적 근해연승어선 재성호가 지난 12일 오후 7시56분쯤 서귀포시 표선면 남서방 약 12㎞ 해상에서 전복됐다. 해경 제공

최근 잇단 어선 사고가 대규모 인명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어선 사고로 100명이 넘는 사망·실종자가 발생한데 이어 올해는 이달 들어서만 26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계절적으로 기상 상황이 급변하는 시기인데다 기후변화로 거세지고 잦아진 풍랑이 사고 위험을 높이고 있다. 경비 부담 등을 이유로 이뤄지는 무리한 조업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16일 해양수산부·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다수의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어선 ‘침몰’ 사고는 지난해 17건으로 이전 4년 평균(연 2건)에 비해 크게 높았다. 어선 ‘전복’ 사고도 24건으로 최근 5년간 가장 많았다. 사고로 인한 사망·실종자도 2023년 78명에서 지난해 119명으로 급증했다. 사망·실종자가 세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2017년 이후 7년 만이다.

어선 사고로 인한 사망·실종자는 올들어 더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 1일 제주시 구좌읍 토끼섬 인근 어선 좌초(3명 사망·1명 실종), 지난 9일 여수 거문도 트롤어선 침몰(5명 사망·5명 실종), 지난 12일 제주 서귀포 해상 어선 전복(2명 사망·3명 실종), 지난 13일 전북 부안군 해상 어선 화재(7명 실종) 등 2월 들어 채 보름이 안되는 사이에 26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다.

“바다가 더 사나워져…2~3일에 한번 꼴로 풍랑”

최근 어선 사고가 끊이지 않는 배경에는 계절적 요인과 기후변화로 달라진 바다 날씨가 있다. 겨울과 봄 사이는 강한 계절풍과 함께 기상 상황이 수시로 변해 어민들 사이에서도 가장 사고가 많이 나는 시기로 인식된다. 낮은 수온 등으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인명 피해도 클 수 밖에 없다. 지난 12일 전복된 재성호도 출항 당시에는 풍랑특보가 없었으나 이후 풍랑주의보가 발효되며 기상이 악화됐다.

경남 통영의 한 수협 관계자는 “최근 시기는 기온 변화에 따른 풍랑·해무 등의 기상 이변이 많아 어선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면서 “풍랑주의보 때는 30t급 이상의 중·대형 어선들은 출항이 가능하지만 갑자기 기상이 악화하면 순식간에 사고를 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해경 관계자도 “강한 너울성 파도가 한차례 친 후 선박이 복원되기 전 2~3차례 연속으로 다시 파도에 맞으면 전복 위험이 커진다”고 밝혔다.

지난 1일 오전 9시24분쯤 제주시 구좌읍 토끼섬 인근 해상에서 애월 선적 채낚기 어선 A호(32t·승선원 7명)와 B호(29t·승선원 8명)가 좌초됐다.  제주해경 제공

지난 1일 오전 9시24분쯤 제주시 구좌읍 토끼섬 인근 해상에서 애월 선적 채낚기 어선 A호(32t·승선원 7명)와 B호(29t·승선원 8명)가 좌초됐다. 제주해경 제공

어민들은 최근 바다 날씨가 더욱 변화무쌍해지고, 바람과 파도가 거세졌다고 주장한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209일) 대비 지난해(225일) 풍량특보 발생 건수는 7.7% 늘었다.

명성환 전남 근해유망협회장은 “예전과 같은 풍랑주의보인데도 요즘은 옛날보다 바람이 자주 불고, 파도의 강도가 세다”면서 “과거 10일에 한번씩 풍랑주의보 내렸다면 요즘은 2~3일에 한번씩 내려지는 것 같다. 분명히 기후변화 영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반해 급변한 기상 상황이 제대로 전파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정부가 지난해 7월 출범시킨 민·관 합동 ‘해양 선박(어선) 사고 재난원인조사반’은 어가들에 제공되는 해양 기상정보가 ‘대해구’(가로·세로 50㎞) 기준이어서 실제 조업 구역의 해상기상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대해구 기준의 기상정보만 믿고 조업에 나섰다가 특정 조업구역 내 기상이 악화되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획량 감소, 경비 부담 등에 무리한 조업

인건비, 유류비와 같은 경비에 대한 부담으로 무리한 조업도 이뤄지고 있는 점도 잦은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제주의 한 어선주협회장은 “선원 최저임금에 따른 인건비와 각종 비용 상승으로 배를 유지하려면 날씨가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무리해서 조업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서 “선원이 10명이라면 한달에 3000만원 정도의 고정 비용이 발생하니 조업을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근해소형선망협회 관계자는 “조업불황으로 날씨가 나빠도 먼바다로 무리하게 조업을 나서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경남 통영 근현망수협 관계자는 “출항이 금지되는 풍랑경보 때와는 달리 풍랑주의보 때는 30t급 이상의 중·대형 어선들은 출항이 가능하기 때문에 갑자기 기상이 악화하면 순식간에 사고를 당하게 된다”며 “기상이 좋지 않으면 어선 출항을 금지하는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기후변화와 남획에 의한 수산자원 고갈, 한일어업협정의 결렬 장기화로 인한 어장 축소 등으로 어업 경쟁이 치열지면서 먼 바다 조업도 많아졌다.

갈치잡이 어선들은 가까운 바다에서는 더 이상 갈치가 잘 잡히지 않는데다 가까운 일본 EEZ에서는 조업하지 못하게 되면서 약 800㎞ 떨어진 동중국 해상까지 먼 바다 조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3일 제주 서귀포 남쪽 약 833㎞ 해상에서 전복된 성산 선적 어선 역시 갈치잡이 배였다. 먼 바다에서 사고가 발생할수록 구조나 수색이 늦어질 수 밖에 없어 인명피해가 커진다.

13일 오전 8시 39분께 전북 부안군 왕등도 인근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에 불이 나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오전 8시 39분께 전북 부안군 왕등도 인근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어선에 불이 나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처 능력이 떨어지는 선원 고령화와 한국어에 서툰 외국인 선원이 증가하는 추세도 사고피해가 커지는 원인으로 꼽힌다. 통계청의 농림어업조사 결과를 보면 어가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은 2014년 33.2%에서 2023년 48.0%로 15%포인트 가까이 증가했다. 반면 법정 안전교육 의무 대상이 아닌 연근해 어선의 외국인 선원은 2003년 991명에서 2023년 1만199명으로 10배 넘게 늘었다.

해수부 관계자는 “최근 잇따르는 어선사고는 해상 기상 악화, 구명조끼 미착용 등 선원들의 안전 불감증, 불법 조업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강도형 해수부 장관을 단장으로 최근 출범한 ‘해양사고 인명피해 저감’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어선 안전사고 예방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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