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나발니 사망 1주기

16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남동부 외곽 보리솝스코예 묘지에 마련된 알렉세이 나발니의 묘비 앞에 추모를 위해 모인 시민들이 줄을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맞서 반정부 운동을 이끌다 지난해 옥중에서 의문사한 알렉세이 나발니를 기리는 시민들의 추모 행렬은 당국의 탄압에도 멈추지 않았다. 나발니 사망 1주기를 맞아 추모 식에 참석한 이들은 “나발니의 저항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16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모스크바 남동부 외곽 보리솝스코예 묘지에 마련된 나발니의 묘비 앞에는 그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북적였다. 이들은 영하 8도의 추운 날씨에도 꽃을 들고 줄을 선 채로 헌화 순서를 기다렸고, 사제가 기도문을 낭독하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묘지에 모인 인파는 최소 1500여명으로 추산된다.
나발니의 지지자들은 언젠가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추모식에 나왔다고 AFP는 짚었다. 러시아에서는 나발니의 이름을 언급하기만 해도 벌금형이나 최대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지난해에도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 장례식에 참석한 지지자 수백명을 구금하는 등 강하게 탄압한 바 있다. 이날 친크렘린궁 텔레그램 채널에는 “추모 행사에 가야할지 고민 중인 이들에게 조언한다. 가지 마라” “빅브라더의 눈이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1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남동부 보리솝스코예 묘지에 마련된 알렉세이 나발니의 묘비 앞에서 시민들이 추모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시민들은 정부의 탄압에 맞서겠다는 뜻으로 추모 행사에 참석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추모식을 찾은 이반(63)은 나발니를 기리는 일이 “나만의 작은 저항”이라고 말했다. 이반은 나발니를 지지한다고 말하기가 늘 조심스러웠지만 그가 죽은 이후로는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두 자녀를 데리고 온 수의사 안나(30)는 “나발니는 우리에게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라며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로 망명 중인 나발니의 부인 유리야 나발나야는 베를린에서 추모 집회를 열고 “(정부의) 보복 위험에도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용기에 감사드린다”며 해외로 망명한 러시아인들이 함께 저항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루마니아, 독일, 체코, 세르비아 등에서도 나발니 추모식이 열렸다.
세계 지도자들도 추모의 뜻을 전했다. 프랑스, 독일, 호주, 캐나다 등 18개국은 공동성명을 내고 “나발니의 죽음은 궁극적으로 러시아 당국의 책임”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나발니가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했다며 푸틴 대통령을 배후로 지목했다. 다만 지난해 “나발니의 죽음은 푸틴의 책임”이라고 주장한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추모 메시지를 내놓지 않았다.
나발니는 2011년 반부패재단을 창설해 푸틴 정권과 정부와 고위 관료들의 비리를 폭로하면서 주목받았다. 2020년에는 독극물을 통한 암살 시도로 죽음의 고비를 맞았지만 살아남았고, 이듬해 독일에서 치료를 받고 러시아로 귀국하던 중 체포됐다. 30년형을 선고 받은 나발니는 옥중에서도 푸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해왔지만 지난해 2월16일 돌연 사망했다.
나발니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은 1년이 지나도록 풀리지 않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그가 ‘자연사’했다는 짧은 성명만 내놨다. 나발니의 변호사와 동료들이 모두 투옥돼 후계자를 물색하기 어려워지면서 러시아의 반정부 운동이 동력을 잃어버렸다는 해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