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서구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 한수빈 기자
LH 청년전세임대 이용자인 A씨는 지난해 6월 임대인 측 대리인과 LH 법무사가 모인 자리에서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했다. A씨는 계약서를 쓴 직후 에어컨과 현관문이 파손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 A씨는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구했으나, 집주인은 이를 거부했다. 집주인은 수리할 만큼의 하자가 아니고, 계약 전 수리를 요구한 것도 아니라는 이유였다. 뒤늦게 임대인은 수리를 해주기로 했지만 문제는 또 발생했다. A씨는 계약 한 달 뒤 임대인의 대리인이었던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특약에 따라 신분증 사본과 주민등록초본을 제출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A씨는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특약이라며 이를 거부했다. 임대인은 A씨의 수리 요청을 거부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거복지 사업 중 하나인 ‘청년전세임대’ 제도가 복잡한 전세계약 구조 때문에 임차인과 임대인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청년전세임대’ 제도는 청년들이 전셋집을 직접 찾아오면, LH가 임대인과 전세 계약을 맺고 이를 재임대하는 ‘전대차 계약’의 형태를 띤다. 청년전용 버팀목전세자금대출같은 일반 정책대출을 받기 어려운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한다.
문제는 복잡한 계약 구조 영향으로 전세임대 제도를 이용하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분쟁이 발생할 때는 갈등 해결이 지연된다는 데 있다. 전셋집의 실제 이용자와 법적 계약자(LH)가 일치하지 않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전세임대제도에선 3자인 LH와 집주인, 세입자가 함께 임대차계약서를 쓰고, LH와 세입자가 따로 전세계약서를 쓴다. 지자체 요구가 있으면 LH와 집주인이 별도의 임대차계약서를 쓰기도 한다. 하나의 전세 계약에 최대 3개의 계약서가 작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집주인과 세입자가 별도로 계약서를 쓰지 않는다. 이때문에 특약 사항이 있을 경우, ‘나는 몰랐다’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셈이다.
A씨도 특약 사항이 적힌 계약서의 존재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서야 알게 됐다. 입주자는 모르는 특약사항이 LH와 집주인 간 계약서에 포함되면서 오해가 커진 것이다.

임대인과의 갈등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A씨는 계약을 해지하려 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임대차 계약상 세입자가 LH로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A씨는 “법률구조공단에서 상담을 받아봤지만 ‘계약 해지 소송은 전대차 계약이기 때문에 LH를 통해서만 진행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면서 “하지만 LH는 ‘계약 해지 소송은 입주자가 집주인과 직접 해야 한다’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LH는 난처하다는 입장이다. 하자 보수를 두고 양측의 입장 차가 워낙 커서 귀책 여부를 가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전세임대는 이용자가 직접 주택을 찾아오는 구조이기 때문에 LH가 사후에 하자 보수를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고도 했다.
LH 관계자는 “표준임대차계약서 상 주택의 하자로 인한 분쟁은 임대인과 입주자가 직접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도 “하자보수요청 공문발송, 임대차계약 해지공문발송, 현장방문, 삼자대면 등 최대한의 중재 노력을 다했다”고 했다. 현재 A씨와 LH는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서 ‘계약을 해지하라’는 조정 권고를 받아냈으나, 집주인이 불복하면서 조정이 각하된 상태다.
전세임대 공급이 확대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A씨와 같이 분쟁에 휘말리는 이용자들이 더 늘어날 수 있어 제도적 개선이 요구된다. 지난해 LH 전세임대는 3만7509호 공급되며 전년 대비 16.8% 증가한 상태다.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운영 중인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LH 전세임대 사업에 참여하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분쟁 사례도 심심치 않게 접수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