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공화국’에서 ‘수거’되지 않기 위하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나는 불안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12·3 비상계엄의 날 이후 아내는 24시간 TV를 켜놓는다. 잠잘 때는 TV를 끄라고 해도 “뭔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불안하다”고 한다. 대통령이 감옥에 가 있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불안한 마음은 줄어들지 않는다.

난데없는 12·3 비상계엄 이후 77일째다. 그날 밤 여의도 국회 앞으로 시민들이 달려왔고, 응원봉을 들고나온 2030세대가 여의도의 밤을 신나는 축제판으로 만들었다.

영하로 떨어진 남태령의 밤은 또 어떤가. 농민들의 트랙터가 공권력에 막히자 양곡법도 잘 모르는 젊은 세대가 응원봉을 들고 달려가 영하의 밤을 새웠다. 뿐만 아니라 3~4시간이나 줄을 서서 발언을 이어갔다. 성소수자들도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면서 차별 없는 세상, 평등세상에 대한 염원을 말했다.

한남동에서도 은박을 입은 ‘키세스단’이 탄생했다. 거기에 ‘선결제’가 나타났고 푸드트럭이 오고 급기야 난방버스가 왔다.

이런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에 세계가 경탄했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역전되어 있다. 일주일에 두 번 헌법재판소에 나와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것도 역겹다. 입만 열면 하는 거짓말도 짜증 난다. ‘계몽령’에서 이제는 ‘호수 위 달그림자’까지 듣게 되었다. 뻔뻔하기도 하고, 비겁하기도 하다. 책임지려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자가 보여주는 저질스러운 블랙 코미디에 더해서 이제는 노상원이란 자의 수첩에 적혀 있다는 ‘수거’ 대상자들과 수거의 방법에 몸서리친다.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독재자들이 써왔던 반인간적인 방법을 총동원해서라도 윤석열은 ‘적’들을 제거하려고 계획했던 게 아닌가.

그 계엄령이 성공했더라면, 나는 지금 어디쯤에서 악랄한 고문을 당하고 있을까? 아니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까?

세계가 감탄한 한국 민주주의가 위험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비상계엄 이후에 지지자들이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밤샘 농성을 하지 않나, 법원을 깨고 들어가는 난동을 부리지 않나, 광장의 말이 폭력 양태로 발전한다. 종북좌파는 식상해서인지 중국을 끌고 들어와 부정선거 음모론을 한껏 부풀린다. 한참 철 지난 공산주의를 끌고 와 ‘멸공’을 외친다.

그들의 광장은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 혐오와 증오, 폭력 선동이 난무한다. 거기에 열광하는 군중을 보면 파시즘의 징후가 아닐까 의심된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급속히 전광훈 세력에 동조화되어간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마저 장악했다. ‘대통령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권위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흉기로 변해버렸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했던가. 우리의 민주주의에는 유독 피가 진하게 배어 있다. 독재정권과 싸우는 민주화 과정에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민주화 제단에 바쳤다.

“무참한 살육으로 수많은 선량한 민주시민들의 뜨거운 피를 뜨거운 오월의 하늘 아래 뿌리게 한 남도의 봉기가 유신잔당들의 악랄한 언론탄압으로 왜곡과 거짓과 악의에 찬 허위 선전으로 분칠해지고 있는 것을 보는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1980년 5월30일, 서강대 김의기 열사가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6층에서 투신하면서 뿌린 유인물의 한 대목이다. 그의 나이 겨우 21세였다. 그 뒤를 이어서 20대의 젊은이들이 광주 진상규명을 외치고 전두환은 물러가라면서 죽어갔다. 마석 모란공원에 가보라. 망월동 제3묘역에 가보라. 양산 솥발산 공원에 가보라.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걸 다 바친 이들이 거기에 누워 있다.

광장서 다시 새 민주주의를 얘기하자

지금은 민주헌정 수호 세력과 윤석열 내란 세력의 물러설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한판 대결이 예고되어 있다. 이 대결에서 진다면, 40년 전의 겨울 공화국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인권과 자유는 억압될 것이고, 수많은 사람이 쥐도 새도 모르게 ‘수거’될 것이다.

그러니 광장에 다시 모이자.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까지,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의 세상까지, 그래서 우리가 만나고 싶은 세상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토론해야 한다.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에서 온라인 공론장 ‘천만의 연결’(talk.bisang1203.net)을 만든 이유다. 새로운 민주주의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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