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백악관에 전화도 못 걸고
대외경제연과 2년만에 합동 세미나 ‘빈수레’
대행체제 탓 적극대응 한계

12일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 조선 호텔에서 열린 ‘한국의 대외경제정책방향 세미나’. 기획재정부 제공.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지만 답답하기만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의 행정부 2기 출범 이후 통상 리스크가 현실화함에 따라 기획재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2년만에 합동으로 세미나를 열고도 뚜렷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권한대행 체제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조차 못하고 있는 위기감에서 계획한 자리였지만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한 것이다.
경향신문이 17일 확보한 ‘초불확실성과 대전환의 시대, 한국의 대외경제정책방향’이란 주제로 지난 12일 열린 합동 정책 세미나 발제문을 보면, 대외연은 “미·중 갈등에 따른 세계적 무역 비용 증가로 인해 새로운 무역 경로 모색해야 한다”며 “신흥시장으로의 통상 네트워크 확대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다자 협력체계를 고도화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는 이전까지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외적 이슈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 제안이 담긴 결론은 없었던 셈이다.
이 세미나에는 김범석 기재부 1차관 등 기재부와 대외연 관계자뿐 아니라 교수와 민간 기업 연구소 등 경제·통상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세미나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등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열렸지만 고민이 해소되지는 않았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진전된 논의 내용보다는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는 정부 측의 위기감만 크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반면 한 참석자는 “정부의 선택지가 워낙 제한적인 상황인 만큼 새로운 내용을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도 했다.
정부는 최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추진하라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권한대행 체제이기 때문에 당장 미국과 협상 파트너로 서기에 물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전화 통화가 뒤로 밀릴 수록 기재부는 오히려 신중한 모습이다. 섣불리 접근했다가 오히려 숙제만 잔뜩 떠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트럼프와 접촉을 했다가 오히려 표적이 돼 무리한 요구를 받을 수 있다”며 “서두를 필요 없이 차분히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실제 정부의 설명처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초기부터 접촉을 시도했지만, 관세 폭탄을 피하지 못했다. 국회측 관계자도 “트럼프 행정부가 지금은 권한대행 체제인 한국 정부를 상대하지 않는 것이 우리로선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고 했다.
여기에는 권한대행 체제로서의 운신의 폭이 좁다는 배경도 깔려있다. 선제적으로 정상회담을 진행한 일본은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대량 구매 등의 카드를 제시했지만, 권한대행으로서는 책임있게 내밀 수 있는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적 압박이 현재 진행형인 만큼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는 “트럼프 입장에서도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미국산 LNG 수입 확대나 조선업 협력을 선제적으로 제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경제 연구소 한 관계자는 “협상 대상에서 자칫 통보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대응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