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래프톤의 차기작 ‘인조이’ 속 AI 캐릭터인 CPC ‘스마트 조이’(왼쪽)가 배고파하는 사람에게 음식을 건네는 모습. 크래프톤 제공
지난 4일 생성형 인공지능(AI) 챗봇 챗GPT 개발사 오픈AI를 이끄는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해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다. 그가 짬을 내 만난 기업인 중 한 명은 슈팅 게임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게임사 크래프톤의 김창한 대표였다. 김 대표는 올트먼 CEO와의 만남 후 “게임 개발과 운영 전반에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과 가능성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산업에서 AI가 중요한 변화를 이끄는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게임 개발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는 데 그치지 않고 AI 캐릭터를 활용해 더욱 생동감 있는 게임 경험을 제공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앵무새 캐릭터? 아닙니다
크래프톤은 지난달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전자 전시회 ‘CES 2025’에서 엔비디아와 공동 개발한 AI 기술 ‘CPC(Co-Playable Character)’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CPC는 이용자와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AI 기반 캐릭터다. 기존 게임의 NPC(게이머가 조종하지 않는 캐릭터)는 정해진 대사와 행동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수행 미션을 주거나, 상점을 운영하거나, 게임 배경을 설명하는 등 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이에 반해 CPC는 게임 상황을 이해해 동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용자와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협력하고, 상황을 인식하고 유연하게 대응해 게임의 몰입감을 높인다. CPC는 엔비디아의 캐릭터 개발 기술인 에이스(ACE)로 구축된 게임 특화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크래프톤 관계자는 “AI를 게임산업의 차세대 개척지로 보고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래프톤 차기작 ‘인조이(inZOI)’에 도입되는 CPC ‘스마트 조이’ 데모 영상에는 CPC가 배고파하는 사람에게 빵을 사서 나눠주고, 길을 잃은 듯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길을 안내하고, 거리에서 춤추는 사람의 사진을 찍는 장면이 담겼다. 배틀그라운드에 도입될 예정인 CPC ‘펍지 앨라이’는 이용자와 음성으로 소통하면서 안전한 낙하 지점이나 필요한 아이템 위치를 알려주고 적을 향해 공격을 수행할 수 있다. 이용자는 혼자서도 팀원과 협력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셈이다.
위메이드 자회사 위메이드넥스트도 엔비디아와 협력해 AI 캐릭터 개발에 나섰다. 회사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차기작 ‘미르5’에서 AI 기술을 적용한 보스 캐릭터 ‘아스테리온’을 선보일 예정이다. 아스테리온은 머신러닝을 통해 이용자 행동 패턴을 학습해 전투를 거듭할수록 더 정교하고 진화한 공격을 펼친다. 이용자들은 매번 새로운 전략을 세워 아스테리온에 도전해야 한다.
AI 모델 만들어 쓰기도
직접 AI 모델을 개발해 게임 사업에 활용하기도 한다. 엔씨소프트는 2023년 자체 개발한 AI 모델 ‘바르코’를 공개했다. 지난해 말 AI 연구·개발을 담당하던 리서치본부를 분사시켜 자회사 ‘NC AI’를 출범시켰다.
박병무 엔씨소프트 공동대표는 지난 12일 실적 설명회에서 자체 모델 활용을 통해 “음성 합성, 애니메이션 분석 작업, 채팅 번역 등 게임 개발 측면에서 굉장한 비용 절감 효과를 낳고 있다”며 “게임 내 데이터 분석, 챗봇, 스팸 필터링 등 운영이나 QA(품질보증) 프로세스도 효율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밥도둑]사람이 아니라 AI 캐릭터?···게임도 AI로 진화 중](https://img.khan.co.kr/news/r/1100xX/2025/02/18/news-p.v1.20250217.ac2e0d70baa6449095f5916c4361514e.jpg)
지난해부터는 대형언어모델(LLM) 개발보다는 소형언어모델(sLLM)로 축소해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자사든 타사든 관계없이 가장 적합한 AI 모델을 활용해 개발·운영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동시에 자체 AI 모델을 고도화해 외부 개발사에 제공하는 방식으로 수익화에도 나선다.
중국 IT 공룡 텐센트는 지난달 빠르게 고품질 3차원(D) 모델을 생성하는 AI 시스템 ‘훈위안 3D 2.0’을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회사는 내부 게임 사업에 자사 모델을 이용하고 있다. 게임 세계의 생동감을 끌어올릴 AI 캐릭터 개발도 진행 중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이 이끄는 AI 스타트업 xAI 산하에 게임 스튜디오를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생성형 AI 사용이 확대되면서 저작권 침해 우려도 나온다. 생성형 AI가 학습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결과물을 생성하는 방식인 만큼 기존 저작물과 유사한 생성물이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임 개발사들은 자체 가이드라인 등을 마련해 저작권 문제에 대비하고 있다. 생성형 AI가 게임 개발의 진입 장벽을 낮춘 점은 긍정적이지만 질낮은 양산형 콘텐츠 범람과 일자리 위협도 고민해야 할 문제다.
세계 최대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은 지난해 1월 게임 개발 및 실행 과정에서 AI를 활용한 방식을 공개하는 조건으로 생성형 AI를 활용한 게임의 유통을 허용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AI 게임 역시 불법적이거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기존 방침을 따르도록 했다.
게임업계는 AI 도입에 적극적이지만 회사마다 온도차가 있다. 후루카와 슌타로 닌텐도 사장은 지난해 7월 “생성형 AI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지만 지식재산권 문제 등도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 발전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도, 단순히 기술만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독창적인 가치를 계속 제공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