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들은, 남자들은 왜 여성혐오가 담긴 욕을 할까. 교사라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만 알려주는 게 아니라 더 깊이 알게 해야 하지 않을까.’ 안타깝기도, 답답하기도 했던 시도는 2023년 학교에서 남학생들의 페미니즘 동아리 ‘도전한남’을 만들었다. 6개월 후 여학생들의 페미니즘 동아리 ‘여유림’도 만들어지면서 간디학교에서는 두 동아리가 함께 토론 수업을 한다. 몇 차시의 수업보다 더 나아간 동아리 속 토론 수업에서는 어떤 교육이 이뤄질까. 대안학교 간디학교의 활동은 많은 일반 학교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시도 선생님의 성평등 교육 이야기를 4회차의 ‘입주자 프로젝트’ 연재로 싣는다. 3회 연재는 ‘청소년들의 연애를 주제로 나눠본 평등한 관계 이야기’다.
플랫 입주자프로젝트 4. 쌤 페미예요?
남자 청소년 동아리 활동 2년 차, 여전히 남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차별, 억압이라는 단순한 정의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페미니즘이 나의 삶과 어떻게 관련 있는지 연결하는 데는 의식적인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연애와 페미니즘의 관계는 어떨까. 누군가에게 설레고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스킨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연애할 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그동안 배운 성평등 관점을 적용해서 우리의 연애를 바라보자고 제안하자 모두 흥미로워했다. 여자 청소년 페미니즘 동아리도 함께 하기로 했다.
남녀 청소년 페미니즘 동아리는 각각 어떤 연애를 해왔는지, 평등한 연애는 어떤 모습일지 이야기한 뒤 함께 만나서 공동 발제를 하고 대화를 나눴다. 같이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에 대한 기대가 높은 만큼 안전한 모임을 위해 지켜주면 좋겠다는 것들을 공유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이성애 중심의 연애 이야기를 주로 하겠지만 다양한 섹슈얼리티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어.”
“이 주제에서 연애 경험의 차이는 없다고 생각해. 말 못 하는 이유가 되진 말자.”
“연애하는 입장에서 말하기 조심스러워. 말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추측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줬으면 해.”
걱정되고 두려운 점들을 먼저 나누고 그것이 충분히 수용된다고 느낄 때 우리는 안전하다고 여기고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다. 그동안 각자 동아리에서 안전함에 대한 감각을 어떻게 만들지 훈련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오늘 대화에서 고려하면 좋을 점들은 솔직하게 꺼내주었다.
경남 산청의 간디고등학교 남학생 페미니즘 동아리 ‘도전한남’ 학생들과 여학생 페미니즘 동아리 ‘여유림’ 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도 선생님 제공
수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 두 가지를 나눠 본다.
첫 번째로 평소에는 그냥 친구였는데 연애를 시작하면 갑자기 여성스러워야 할 것 같고, 남성스러워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모두가 매우 공감했다. 등학교길 인도에서 남자가 도로 쪽에 서고 여자가 안쪽에 서게 되는데,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지켜주는 멋진 남성이 되는 것 같다는 쪽과 나도 내가 좋아하는 남자를 지켜주고 싶다는 이야기가 양립했다.
데이트할 때 남자인 내가 결제해야 할 것 같다는 마음도 나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왠지 남자가 사야 할 것 같은 마음도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분명하게 자기 의견을 밝히는 사람이지만 왠지 남자 친구 앞에서는 말없이 상대방의 의사를 따라줘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나눠 주었다. 여성스러운 모습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했는데 남자친구 앞에서는 변한다는 것이다.
성애적 관계가 시작되면 왜 성역할을 자처하게 될까. 이 부분에 대해 옳다, 그르다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경험을 나누면서 서로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은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상대방이 느낄 부담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다. 꼭 여성스럽고 남성스럽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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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스킨십을 할 때마다 허락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경계와 동의가 중요하다는 교육은 받았는데 막상 관계에서 이를 적용할 때 어렵다는 것이다. 여학생들은 막상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거절할 수 없고, 거절했는데 상대가 거절의 신호를 못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상대방이 거절의 의사를 ‘부끄러워’ 그러는 것이다, ‘튕기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은데 아닌 건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막상 스킨십의 현장에서 내가 지금 좋은지 싫은지 잘 몰라서, 분별할 수 없어서 거절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고 했다. 남학생, 여학생 모두 우리는 거절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연애할 정도의 신뢰가 있는 사람이라면 스킨십에 대한 소통도 부끄럼 없이 해보자는 다짐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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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십에도 성역할이 있어서 여성 입장에선 덜 하는 게 좋고, 남성 입장에서는 하는 게 좋은 거라는 인식이 있다는 것도 공유했다. 여성 입장에서 스킨십이 무섭기도 하다고, 여성이 스킨십을 많이 해봤다면 ‘까졌다’, ‘불량하다’는 인식이 있고 남성들은 스킨십 경험이 많은 것이 권력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남학생들은 바디 카운트(body count·성관계 경험의 횟수를 이르는 말), 연애 횟수, 성기의 크기 등이 남성 커뮤니티에서 권력으로 인식된다는 것에 공감했다. 졸업을 앞두고 ‘연애를 3년간 안 해서 학내에서 게이라는 썰이 돌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주고받는 걸 보면 심지어 이것은 ‘이성애 한정’이다. 게이에 대한 혐오와 여성혐오가 깊이 관련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긴 대화를 나눴다.
영역을 넘나들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던지다 보니 어떻게 존재와 존재로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생겼다.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과 경험 속에 있지만 우정을 나누고 사랑하고 싶은 것만은 분명하다. 어떻게 서로를 존중하며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결국 나 개인의 성찰과 관계 안에서 용기로 표현되어야 하고,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문화와 구조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유롭고 친밀한 연애 관계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자유롭지 않다. 연애를 규정하는 방식과 인식이 과거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과 함께 미래로 가고 싶다. 그리고 그들의 연애는 지금과 달랐으면 좋겠다.
▼ 시도 간디학교 교사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시도 선생님의 성평등 교육 이야기를 4회차의 ‘입주자 프로젝트’ 연재로 싣는다. 입주자 프로젝트는 플랫 독자(입주자)들과 플랫팀 기자들이 만나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는 프로젝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