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 대변인 명의 담화 발표
공식 입장 “맞대응할 일고의 가치 없다”
‘협상 조건’ 제시하고 수위 조절하는 모습
3월 한·미 연합연습에 북한 대응 주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화성지구 4단계 1만 세대 살림집(주택) 건설 착공식에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7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18일 미국의 ‘북한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두고 “맞대응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북한 당국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비핵화 원칙을 직접 겨냥한 입장을 낸 건 처음이다. 외무성 담화 형식인데다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진 않아 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위를 조절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의 북한 비핵화 원칙은) ‘비핵화’라는 실패한 과거의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현실 도피적인 입장”이라며 “미국의 행동을 가장 단호한 어조로 규탄 배격한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담화 서두에 한·미·일 외교장관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명시된 점을 언급하며 미국을 비판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북한의 비핵화를 두고 “실천적으로나 개념적으로마저도 이제는 더더욱 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낡고 황당무계한 계획”이라며 “미국의 근시안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현대인에게 원시사회로 되돌아올 것을 간청하는 것”, “어리석음의 극치”라고도 했다. 대변인은 그러면서 “앞으로도 국가수반이 천명한 새로운 핵무력 강화 노선을 일관하게 견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다고 과시하면서 핵무력 고도화 추진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향후 미국과 대화하더라도 비핵화는 거부한다는 뜻을 못박은 것으로도 해석된다.
다만 외무성 대변인이 “미국과 그 추종 세력들의 적대적 위협이 존재하는 한 우리에게 핵은 곧 평화이고 주권이며 국가 헌법이 부여한 정당 방위수단”이라고 밝힌 것을 두고는 일종의 협상조건 제시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면 대화를 통해 핵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이번 담화는) 역설적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폐기된다면 핵무력 강화 노선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다”며 “북·미 간 핵군축 협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번 담화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나 그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 명의로 나오진 않았다.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위를 조절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구체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협상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은 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김 위원장과의 친분을 거론하면서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왼쪽)이 지난 1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이와야 다케시 일본 외무상과 회담을 개최했다. 외교부 제공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미국이) 비효과적인 압박수단에 계속 매달릴수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은 전략적 힘의 상향조정에 필요한 새로운 기회를 계속 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한·미 연합훈련이나 대북제재를 지속하면 북한은 이에 대응해 전략무기를 실험하거나 강화하는 행보를 보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오는 3월 중순 진행되는 대규모 한·미 연합연습 ‘자유의 방패’(FS·프리덤실드)에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에 맞대응한다는 명분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시험발사 등 전략무기 실험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반면 북한이 미국의 대북정책을 더 지켜보기 위해 로키(낮은 수위)로 대응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