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 ‘명태균 게이트 진상조사단’ 의원들이 지난 17일 국회에서 ‘명태균 게이트’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15일 구속된 정치브로커 명태균씨는 “날 잡으면 한 달 만에 대통령이 탄핵될 텐데 감당되겠나”고 호기를 부렸다. 그로부터 18일 뒤 대통령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내란을 일으켰고, 국회는 12월14일 그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명씨가 구속되고 한 달이 채 안 된 때였다. 명씨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
명씨가 지난 18일 김건희 여사의 또 다른 공천개입 의혹을 폭로했다. 녹취록 제목은 ‘김건희와 마지막 텔레그램 통화 48분’이었다. 명씨가 지난해 2월16~19일 김 여사와 5~6번 통화한 내용을 복기한 것이라고 한다. 녹취록에서, 김 여사가 김상민 전 검사가 국회의원이 되게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명씨는 그런 사람 공천하면 총선에서 진다고 난색을 표했다.
그 뒤에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명씨가 “이 추세로 가면 110석을 넘지 못합니다”라고 하자, 김 여사는 “아니에요, 선생님. 보수정권 역사 이래 최다석을 얻을 거라 했어요”라고 반박한다. 명씨가 “누가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묻자, 김 여사는 “이철규·윤한홍 의원이 그렇게 말했다”고 답한다. 이·윤 의원은 대표적인 ‘윤핵관’들이다. 민주화 이후 총선에서 국민의힘 계열이 가장 많은 의석수를 차지한 건 2008년 총선 때 153석이다. 윤석열 부부와 측근들은 총선이 두 달도 남지 않은 시점까지 국민의힘이 154석 이상을 차지하는 ‘역대급 압승’을 기대했다는 것이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국민의힘은 108석으로 역대 두번째로 적은 의석수를 얻는 데 그쳤고, 오히려 야권이 192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다. 명씨 예측이 적중한 것이다. 윤석열과 그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민심에 귀 닫고 지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구중궁궐에서 간신과 아첨에 둘러싸여 국정을 운영했으니, 정권이 망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총선에서 무참하게 패배했으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돌아보는 게 정상이련만, 윤석열은 ‘압승 기대’와 ‘참패 결과’ 사이의 인지부조화를 부정선거 망상으로 메운 것 같다. 부정선거 증거를 찾겠다며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계엄군을 국회·선관위에 난입시켜 자신도 망하고 나라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다. 반성적 사고 능력이 없는 권력자가 이렇게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