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250년 전의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

관세는 오랜 역사 속에서 강대국들이 경제적 우위를 지키기 위해 사용한 중요한 수단이었다. 국가 간 무역이 시작된 이래로 관세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국제 질서를 좌우하는 무기가 되어왔다. ‘Tariff’라는 단어가 이슬람과의 무역 과정에서 아랍어 ‘ta‘rif’에서 유래하여, 중세 지중해 무역으로 넘어오면서 이탈리아어 ‘tariffa’를 거쳐, 영어로 정착된 것만 보아도 관세가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관세는 단순한 세금을 넘어 무역전쟁과 국가 간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18세기 영국과 미국 식민지 사이에서 벌어진 ‘보스턴 차 사건’이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영국이 식민지에 부과한 불공정한 관세가 미국 독립의 촉매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보스턴 차 사건은 1773년, 미국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의 차법(Tea Act)에 반발하여 보스턴 항구에 정박한 동인도회사의 배에서 차 342상자를 바다에 던진 것이다. 당시 영국은 7년 전쟁 이후 막대한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식민지에서 세금을 거둬들이려 했다.

식민지인들은 자신들의 대표가 없는 의회에서 일방적으로 결정된 세금에 강하게 반발했다. “대표 없는 과세는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라는 구호는 불공정한 경제 구조에 대한 분노를 그대로 보여준다.

보스턴 차 사건은 단순한 경제적 저항을 넘어, 미국 독립전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영국은 이 사건에 대응하여 보스턴 항구를 폐쇄하고, 식민지의 자치를 제한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식민지의 단결을 초래했고, 1774년 필라델피아에서 13개 식민지 대표들이 모인 ‘제1차 대륙회의’를 통해 미국 독립운동이 본격화되었다.

패트릭 헨리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고 외쳤으며,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조지 워싱턴은 “우리는 더 이상 영국의 노예가 아니다”라며 독립을 향한 의지를 다졌다. 결국 1776년 7월4일 미국은 독립선언문을 발표하며 영국으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했다. 영국이 관세정책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다 오히려 식민지를 잃은 것이다.

250년이 지난 오늘날, 이제 미국이 글로벌 경제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미국이 불공정한 무역구조 속에서 착취당하고 있다며 본격적인 보호무역 정책을 펼쳤다.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했고, 이는 미·중 무역전쟁의 서막이 되었다.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부과하며 기존 자유무역협정을 뒤흔들었고, 유럽산 자동차와 반도체에도 관세 부과를 검토하며 동맹국들과의 경제적 갈등을 심화시켰다. 이제 막 시작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격적 관세정책은 가장 가까운 캐나다와 멕시코를 시작으로 중국과 유럽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미국의 이런 관세정책은 1930년대 대공황 당시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의 실수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자, 각국이 보복 관세를 시행하며 세계 무역이 크게 위축되었다. 결국 이 조치는 대공황을 더욱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었고, 세계 경제는 오랜 기간 회복하지 못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250년 전 영국이 식민지에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다가 패권을 잃었던 것처럼, 지금 미국도 동맹국들을 압박하다가 신뢰를 잃을 수 있다. 과거 영국의 관세정책이 미국의 독립을 가져온 것처럼, 미국의 관세정책이 글로벌 경제 질서를 새롭게 재편할 수 있다.

당시 영국은 힘의 우위로 식민지를 무리하게 통제하려 했고, 지금 미국도 패권국의 지위를 이용하여 각국에 경제적 부담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결과는 다르게 흘러간다.

보스턴 차 사건이 영국의 지위를 흔들었던 것처럼, 지금 시행하는 미국의 관세정책이 미국 중심의 경제 질서가 흔들리는 역사적 증거가 될 수도 있다.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

이윤학 전 BNK자산운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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