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압송전탑’ 이번엔 금산·정읍 주민들 법정 공방

이동백 고압송전탑 반대 정읍대책위원회 상임공동대표(위쪽)와 박범석 송전선로 금산군 경유 대책위원회 위원장이 한전의 송전탑 건설 예정지를 각각 가리키고 있다.
176.6㎞에 380개 세울 계획
권익위 “입지위 구성에 하자”
한전 “위법 없어” 추진 강행
주민들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판사님,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국가 사업을 반대하자는 게 아닙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정상적으로 사업을 진행시켜달라는 것뿐입니다.”
지난 14일 ‘입지선정위원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3차 심문기일이 열린 대전지법 304호 법정. 법정에 있던 박범석 송전(탑)선로 충남 금산군 경유 대책위원장(61)이 재판부를 향해 호소했다.
대책위는 이날 한국전력공사가 송전선로 건설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절차적 하자에 대해 지적했다.
법정에는 박 위원장과 금산 진산면 주민 등 60여명이 40여분간 가까이 진행된 재판 과정을 숨죽여 지켜봤다. 이날 심문기일을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조만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결론을 내게 된다.
한전은 전북 정읍시에서 충남 계룡시까지를 연결하는 34만5000V 고압 송전선로 건설 사업을 추진 중이다. 전북 서남권과 전남 신안에 있는 해상풍력 등의 발전 전력을 수도권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다.
사업 계획안을 보면 신장성변전소~신정읍변전소~신계룡변전소 176.6㎞ 구간에 고압 송전선 철탑 380개를 세울 예정이다. 송전선로가 지나는 지역은 금산 등 9개 지자체(정읍, 임실, 김제, 완주, 진안, 금산, 논산, 계룡, 대전)다. 사업 착공은 2027년, 준공은 2029년 12월이 목표다.
사업을 두고 선로가 지나는 지자체 주민들이 반발하면서 한전과 법정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금산군 대책위원회는 사업의 입지선정위원회가 선로 경유지를 결정한 결의 내용에 대해 효력을 정지시켜달라고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박 위원장은 “2023년 초부터 한전이 선로 경유지 선정 작업을 진행했지만, 정작 주민들은 10~15개월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주민 주도형 입지선정위원회를 중심으로 추진되는 사업인 만큼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함에도 정작 주민 의견 수렴은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정읍 주민들도 반발하긴 마찬가지다. 이동백 고압송전탑 반대 정읍대책위원회 상임공동대표(63)는 “송전선로 건설 사업은 경기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등 수도권 산업단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것으로, 재생에너지를 수도권에 끌어가기 위해 청정지역인 농촌에 수백개 철탑을 박는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한전이 추진하고 있는 송전선로 건설은 수도권 집중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 균형 발전을 이뤄내겠다는 정부 기조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선로 경유지 주민들은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도 제기했다. 주민 주도형 입지선정위원회에 주민 대표 자격으로 공무원인 면장과 부면장 등 2명이 활동하는 등 입지선정위 구성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내용이다.
권익위는 일단 주민들 손을 들어줬다. 권익위는 “입지선정위의 구성에 하자가 있어 보인다”며 “한전은 위원 구성의 하자가 최적 경과대역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지 재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입지선정위 구성에 하자가 있다는 점이 드러났고, 권익위에서도 사업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의결을 했지만 한전은 여전히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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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측은 입지선정위 구성 등 사업 추진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입지선정위 운영 규범을 기반으로 위원회가 구성됐고, 위원회에 지자체 담당자가 들어간 것은 관련 지자체들과 협의한 내용이기 때문에 위반사항이 없다”며 “공무원은 누구보다도 지역의 상황을 잘 알고 있으니 주민들의 의견을 대변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