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전쟁통에 ‘LNG 끼워팔기’…트럼프, 우크라 종전 대비 작업

정유진 기자

러시아산 가스 제재 완화 땐

유럽 최대 수출국 지위 잃어

동아시아 공급망 구축 계획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통상 전략에서 핵심 키워드는 ‘관세’와 ‘액화천연가스(LNG)’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가 단순한 통상 정책이 아닌 지정학적 무기로 활용되는 것처럼, LNG 역시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에너지 품목만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무기 삼아 세계 각국에 미국산 LNG 수입 확대를 압박하고 나선 데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등 지정학적 이슈가 연동돼 있다.

미국이 상호관세와 철강·알루미늄 25% 관세를 예고한 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미국산 LNG 수입 확대를 약속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 국무부는 지난 15일 한·미 외교장관 회담 후 내놓은 입장문에서 “조선·반도체·에너지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려는 노력, 특히 LNG 수출 증가를 환영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산 LNG 수입 확대와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이 공들이는 450억달러 규모의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세계 1위인 미국의 천연가스 생산량은 2023년 기준 1조3500억㎥로 2위인 러시아의 두 배, 3위인 이란의 다섯 배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정부가 환경에 미칠 영향 등을 우려해 중단시킨 LNG 프로젝트를 부활시켜 2030년까지 수출량을 두 배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다만 수출 전망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러시아산 석유·가스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가 시행된 후 그 반대급부로 유럽의 최대 LNG 수출국이 됐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종전 협상이 진행되면, 대러 제재 일부가 해제되면서 미국산 LNG 수요에 변동이 올 수 있다. 동유럽 국가 일부는 미국산 LNG 대신 러시아 가스를 택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유럽연합(EU)을 향해 “미국산 석유·가스 수입을 대규모로 늘리라”고 요구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와 유럽 국가 간 갈등도 주목할 요소다. 이효영 국립외교원 교수는 “EU는 대러 제재 해제에 반발할 것이지만, 미국은 수출 물량의 급격한 증가로 자국 내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제재 일부를 해제해 국제 LNG 공급량을 조절하려 할 것”이라면서 “이는 트럼프 정부와 EU 간 또 다른 (무역) 마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의 수요 감소를 고려해 새로운 LNG 수출처를 찾고 있는 미국이 동아시아로 눈을 돌리고 있는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기존 주요 공급처인 호주·카타르 대신 미국산 LNG를 수입하려면 더 긴 운송거리를 감당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미국은 미국산 LNG 구매가 중국을 견제하고 역내 에너지 안보를 지키는 길이라는 지정학적 논리까지 끌어오고 있다. 최근 미 싱크탱크인 ‘대서양협의회’는 한·일의 주요 에너지 수입 경로인 말라카 해협이 남중국해와 맞닿아 있어 중국발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돼 있는 만큼 “미국과 LNG 무역을 심화함으로써 베이징에 대한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소속 댄 설리번 상원의원도 지난 5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세미나에서 “일본, 한국, 대만이 카타르에서 가스를 많이 수입하는 것은 큰 실수”라면서 “중국이 카타르에 입김을 넣어 가스 수출을 중단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미국산 LNG 수입을 늘리는 것이 관세 협상에서 제시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지만 모든 나라가 같은 카드를 제시할 것이어서 협상의 충분조건이 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유럽 상황을 고려할 때 미국이 LNG 수출 시장에서 마냥 유리한 입지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해 협상 전략을 짤 필요는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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