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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거시의 추억, 혹은 쓸모

입력 2025.02.18 21:41

수정 2025.02.18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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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혁기의 책상물림]레거시의 추억, 혹은 쓸모

사회의 흐름에 따라 언어가 변화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새 어휘가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기존 어휘의 뜻이 분화 혹은 확대되기도 한다. 어느 날 급격하게 추락하는 운명을 맞는 어휘도 있다. 우리말은 아니지만 요사이 부쩍 많이 쓰이는 ‘레거시(legacy)’가 그런 예다.

원래 레거시는 법적으로 인정받은 유산을 뜻한다. 고인은 가고 없지만 지금 우리 곁에 있는 듯이 도움을 주는 것이 유산이다. 점차 과거의 일이 현재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상징하는 말로 의미 영역을 넓혀 갔다.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레거시는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의 일부를 규정하는 요소로 사용됐다. 어제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오늘이 없듯이 내일 역시 오늘의 집적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선한 가치를 지닌 레거시야말로 우리가 후손에게 남겨줄 수 있는 선물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의미를 담으려면 다른 말을 찾아야 하겠다. 컴퓨터 앱의 버전을 업데이트한 뒤 기존 프로그램과의 호환성을 위해 남겨두는 소스 코드를 뜻하는 ‘레거시 시스템’이란 말이 통용되면서, 잠시의 유예 후 폐기해야 하는 낡은 것이라는 의미가 우세해졌다. 더욱이 최근에는 기존 언론 매체를 ‘레거시 미디어’로 매도하고 신뢰성을 뿌리부터 부정하는 주장이 횡행하고 있다.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편향된 정보를 사실처럼 유포하고 있으니 폐기 처분해야 마땅하다는 선동이 난무한다.

유지보수비와 보안 취약성을 감수하면서 레거시 시스템을 남겨두는 것은 오랜 기간 검증된 안전성을 활용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낡은 것이 지니는 가치와 쓸모를 한시적으로나마 존중하며 기술의 연속적 발전을 도모하는 셈이다. 반면 레거시 미디어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유튜브 개인 방송의 대다수는 연속적 발전은커녕 검증과 정제의 기본도 갖추지 않은 내용을 무책임하게 남발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이 의도적으로 취사해 소비하는 정보의 소스는 대부분 레거시 미디어의 취재로 만들어진 것이다. 오래되고 안정적인 가치를 지키는 ‘보수’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이 선동을 주도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미래에 남겨질 현재의 흔적이 심히 걱정스러운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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