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에서 깨어나기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깨끗해졌는데요?”

치과에서 들은 말이다. 매번 치아 사이 음식 찌꺼기가 남아서 잇몸 상태가 좋지 않아 혼이 났었다. 반년 전부터 고기나 질긴 채소를 먹고 나면 이 사이에 이물감을 확실히 느끼기 시작했다. 별수 없이 치실을 꼬박꼬박 사용하게 됐고, 드디어 칭찬을 들은 것이다. 치아 사이 간격이 넓어지면서 생긴 불편감이 통각의 기준점을 넘어서버렸고 그 끝이 잇몸 상태의 호전이라는 아이러니.

오랫동안 해오던 치아 관리 습관을 바꾼 것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아니었다.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습관의 힘이 더 강해서 한동안 대충 하다 말았다. 습관을 바꾼 계기는 통증이란 분명한 신호였다.

그 맥락에서 만일 지난해 12월3일 느닷없는 계엄 선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충동적이고, 예측 불가한 사람이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선출된 대통령이니 남은 임기 동안 큰 사고 없이 넘어가기를 바라는 것이 소시민의 일반적 마음이 아니었나 싶다. 오후 10시의 계엄 선포는, “가만히 두면 안 되겠다”는 방향 전환의 모멘텀이 됐다. 마치 확실해진 이물감을 느낀 그날같이.

그런데 계엄과 탄핵에 사회적 혼란을 우려하며 점진적 변화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례를 보자. 1967년 9월3일 오전 4시30분을 기해, 스웨덴은 도로 차량 통행을 좌측통행에서 우측통행으로 바꾸었다. 다른 나라와 규칙을 일치시키기 위한 정책적 결정이었는데, 놀랍게도 교통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가 대폭 줄어들었다. 모두 신경 써서 운전하고 길을 건넌 덕분이다. 사회적 요구에 의한 확실한 변화가 모두 조심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캐스 선스타인과 탈리 샤롯은 <룩 어게인>이란 책에서 굳어진 관행과 습관의 변화를 위해서는 기준점을 확실히 넘어서서 뇌에서 위험신호로 여길 만한 자극이나 계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외부 상황의 인식을 감정적으로 평가하는데, 기준점 이하라면 기존 방식을 유지하고 그걸 넘어서면 비로소 위험신호로 인식하고 전환을 시도한다.

그런데 뇌는 적응을 잘하는 기구라 시간이 지나고 같은 자극이 반복되면 이전만큼 낯선 자극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더 이상 전과 같은 신경 반응을 하지 않고 과거로 돌아가고는 한다. 스웨덴의 교통사고 건수도 2년이 지나자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가짜뉴스나 정치인의 말에 담긴 거짓을 보자. 처음에는 놀라움이나 새로움이 뇌를 각성시켜서 진위를 가리게 하고 그 말에 반박하게 만든다. 지속해서 듣다 보면 어느새 그 정보를 진실일 수 있다고 보는 경향이 커진다. 더 이상 새롭지 않아 신경의 각성이 일어나지 않은 결과 사실로 받아들여버린 것이다. ‘진실착각 효과’라고 하는데, 나이·학력·직업에 따른 차이가 없었다. 뇌는 정보를 대할 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가리기보다 낯선지 익숙한지를 우선으로 보고, 익숙한 것은 사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더 강하다.

각 진영은 알고리즘에 의한 ‘필터 버블’로 인해 계속 보던 정보들만 반복해 습득하고 있다. 양측의 말을 들어보면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같이 보일 때가 있다. 3개월 전의 놀라움으로 시작한 각성이 시간이 지나면서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힘이 강해지고 있고, 동시에 서로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서 팩트와 상관없는 내용을 사실이라 믿는 사람도 늘었다. 사안에 대한 지지도 변화는 놀람에 이어지는 적응의 관점으로 이해할 부분이 있다.

실은 처음 불편하던 우측 아래가 아닌 왼쪽 어금니 쪽에 새로 음식이 끼기 시작한 것이 치실을 꾸준히 쓰게 만들었다. 이렇게 의지와 의무감보다 낯선 자극이 더 큰 동기로 작동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익숙해져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방향에서 정보를 취득해 낯설게 보려는 시도는 어떨까 싶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Today`s HOT
아름다운 선행, 구조 대원들에 의해 살아난 동물들 페르시아 새해를 앞두고 이란에서 즐기는 불꽃 축제 베르크하임 농장에서의 어느 한가로운 날 밤새 내린 폭우, 말라가주에 목격되는 피해 현장
전사자들을 잊지 않고 추모하는 시민들 동물원에서 엄마 곰의 사랑을 받는 아기 곰 '미카'
북마케도니아 클럽 화재, 추모하는 사람들 케냐를 국빈 방문한 네덜란드 국왕
산불이 일어난 후 쑥대밭이 된 미 오클라호마 가자지구에서 이프타르를 준비하는 사람들 최소 6명 사망, 온두라스 로탄에 비행기 추락 사건 220명 사망, 휴전 협상 교착 상태서 공습 당한 가자지구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