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7일(현지시간)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대통령궁을 나서고 있다. AFP연합뉴스
‘가상통화 예찬론자’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밈코인(유행·유머 등에 기반해 만들어진 가상통화) 사기 스캔들 파장이 커지고 있다. 밀레이 대통령은 사기 의혹을 부인했지만, 문제가 된 가상통화를 만든 창립자가 밀레이 대통령과 그의 동생에게 밈코인 관련 청탁을 했다는 문자 메시지 내용이 공개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일간지 라나시온은 18일(현지시간) 리브라 가상통화를 만든 켈시에르벤처 창립자 헤이든 데이비스가 지난해 12월11일 한 밈코인 투자자에게 ‘밀레이가 (리브라와 관련해) 트윗을 하고 직접 회의를 하고 홍보할 수도 있다’ ‘내가 그 사람을 조종한다’고 보낸 문자 메시지를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데이비스는 ‘그(밀레이 대통령)의 여동생에게 돈을 보냈고, 그는 내가 말한 것에 서명하고, 원하는 것을 할 것’이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밀레이 대통령의 여동생 카리나 밀레이는 대통령실 총무장관직을 맡는 등 국정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다만 데이비스는 메시지 내용과 관련한 라나시온의 질의에 “(문자를 보낸) 기억이 나지 않는다. 휴대전화 기록에서 찾을 수 없다”며 “밀레이 대통령과 카리나에게 금전을 지불한 사실도 없다”고 해명했다.
가상통화 친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 14일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에 자국 중소기업 자금 지원을 위한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한 웹사이트 링크를 올렸다. 웹사이트에는 ‘밀레이 대통령의 자유주의 사상을 기리고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강화하고 기업가 정신과 혁신을 지원하기 위해 고안된 코인’이라는 가상통화 리브라 소개 글이 있었다.
이후 가상통화 매수자가 급증하면서 개당 0.5달러(약 719원)이던 리브라는 개당 5달러(약 7194원)로 10배 가까이 급등했다. 그러다가 불과 몇 시간 만에 0.19달러(약 273원)로 94% 폭락했다. 시총은 44억달러(약 6조3300억원)가 증발했다.
순식간에 가상통화 가치가 떨어지자 밀레이 대통령의 리브라 추천이 작전 세력에 의한 의도적인 범행과 연관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핀테크 업체들의 경제단체인 ‘아르헨티나 핀테크 상공회의소’도 성명을 내고 이 사건이 ‘러그 풀’(가상통화 개발자가 합법적인 투자를 유치해 가치를 끌어올린 뒤 지분을 매각하는 사기)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 이후 관련 게시글을 지운 밀레이 대통령은 수세에 몰렸다. ‘조국을 위한 연합’ 등 야당은 그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코인 급락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은 밀레이 대통령을 대상으로 사기 혐의로 집단 소송을 걸었다.
밀레이 대통령은 사기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전날 보도된 TN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기업가의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소식을 퍼뜨린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 사건으로 밀레이 대통령의 가상통화 대중화 정책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과 함께 가상통화를 강력히 지지하는 국가지도자로 꼽힌다. 2023년 대선 후보 시절 “비트코인은 법정화폐의 대안”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아르헨티나 시민들은 비트코인 랠리 분위기에서 가상통화 투자를 늘리는 추세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진단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에는 이 나라에서 가상통화 관련 사기 범죄 피해도 그 전보다 5배 급증한 것으로 비정부기구 ‘비트코인아르헨티나’는 집계했다.
비트코인아르헨티나의 법률 책임자인 가브리엘라 바티아토는 “절박한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위험을 측정하지 않고 성급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며 “이는 사기꾼들의 쉬운 먹잇감이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