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지지자의 주민소환 운동에
야당은 선거법 개정으로 맞대응
제3지대 몰락하고 대립만 격화

라이칭처 대만 총통/EPA 연합뉴스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압력을 받고 있는 대만에서 정치적 대립이 더욱 격화하고 있다. 올해 예산안에 대한 여야 합의는 끝내 불발됐으며, 여야는 ‘주민소환 운동’과 주민소환을 까다롭게 하는 ‘선거법 개정’을 주고받았다.
대만 중앙통신사는 19일 대만 입법원(국회)이 올해 예산안 후속 조치 합의 처리에 실패하고 역대 최대폭의 감액 예산안을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입법원이 지난달 확정한 대만의 올해 정부 총지출은 3조1325억 대만달러였다. 야당인 국민당과 민중당은 정부가 지난해 말 제출한 예산안에서 전체의 6.6%에 해당하는 2076억 대만달러(약9조원)를 삭감했다.
정부 지출 대부분이 삭감 또는 동결돼 예산안이 이대로 최종 확정되면 국정운영 차질이 불가피하다. 민진당은 헌법이 허용하는 한에서 수정 예산안을 짤 수 있는 방법을 찾자고 제안했다. 한궈위 입법원장은 전날 여야 각 대표단을 소집해 예산안 후속처리를 논의했으나 끝내 합의가 불발됐다.
입법원이 제출한 예산 심사 보고서를 보면 총통실, 감찰원, 사법부 등 주로 총통의 권한과 사정기구 관련 운영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군의 장비 구매 예산은 3% 삭감됐으며 국방 예산 가운데 900억 대만달러 규모의 사업 추진비가 동결됐다. 1000억 대만달러에 달하는 전력회사 보조금도 전액 폐지됐다. 국방비 증액을 비롯해 라이칭더 총통이 공언한 약속 이행에 빨간 불이 켜졌다.
여야는 상호 비난전을 벌이고 있다. 제1야당인 국민당은 라이 총통과 민진당이 독단적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입장이다. 민진당은 국민당이 중국과 같은 편에 서서 대만을 위태롭게 한다고 비난한다.
줘룽타이 행정원장(국무총리격)은 지난달 예산 최종 심사를 앞두고 야당의 보복성 예산 심사는 경쟁국의 추월을 허용하고 중국을 이롭게 하는 행위라면서 “중화민국(대만) 파멸의 첫걸음” 이라고 비판했다. 야당은 민진당의 유언비어를 동원한 비방이야말로 “국력을 약화하는 원흉”이라고 맞섰다.
예산 대치가 진행되는 와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만 반도체 산업을 겨냥해 압박을 쏟아내자 라이 총통은 지난 14일 국방비를 늘리고 미국을 상대로 한 무역흑자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후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대만이 70억~100억달러(10조원~14조원) 규모의 미국산 무기구매를 검토한다고 보도했다. 또 다시 ‘국정을 독단적으로 운영한다’와 ‘중국을 이롭게 한다’는 비방전이 반복된 끝에 예산안 후속 조치 합의가 무산됐다.
지난 총선에서 제3지대 돌풍을 일으키며 캐스팅보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민중당은 여야 극한 대립에 합류했다. 커원저 민중당 대표가 선거 직후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고 몰락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커 대표에게 징역 28년6월형을 구형했다. 민중당은 커 대표에 대한 수사를 정치 보복으로 여기고 있다. 제3지대가 형성된 대신 야당과 여당의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민진당 지지자들은 국민당 의원에 대한 주민소환운동을 벌이고 있다. 대만 선거법에는 유권자가 직접 의원을 파면할 수 있는 절차가 규정돼 있다. 국민당과 민중당은 주민소환 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선거법을 개정해 18일 법이 공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