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의 세 가지 착각

김광호 논설위원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30·장년 모두 Win-Win하는 노동개혁 대토론회’에서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앞줄 왼쪽), 권성동 원내대표(뒷줄 왼쪽), 나경원 의원(뒷줄 오른쪽), 김문수 노동부 장관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30·장년 모두 Win-Win하는 노동개혁 대토론회’에서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앞줄 왼쪽), 권성동 원내대표(뒷줄 왼쪽), 나경원 의원(뒷줄 오른쪽), 김문수 노동부 장관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의 그 밤 이후 국민의힘은 다 ‘계획’이 있었다. 애초 목표는 대통령 윤석열이 아니었다. 그를 지킬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아무리 제정신 아니라도 느닷없는 비상계엄으로 나라를 결딴낸 권력자가 온전할 거라 생각할 수는 없었다. “지키면 안 되는 사람이다. 미친 짓 한 거다. 탄핵 기각을 믿는 의원은 10%도 안 된다”(중진 의원)고 했다.

목표는 어차피 ‘윤석열 이후’였다. 어른거리는 조기 대선 앞에 ‘이중 플레이’였다. “(윤석열을) 버리더라도 절차에 따라 ‘할 수 없었다’고 보여야 하지 않겠나”라는 속말들은 그런 암시였다. 업둥이의 자멸로 전대미문의 위기에 처했지만, 적당한 시점에 ‘꼬리’(윤석열)를 끊어내고 지지층도 묶어두며 갈 수 있을 거라 계산했다. ‘비호감 이재명’이 그 계산의 단단한 언덕이라 여겼다.

사정이 사뭇 달리 흘러간다. 의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옥중의 윤석열을 찾아 교시를 받고, 법원까지 습격한 극우들 집회에 머리를 내민다. 탄핵에도 당 지지율이 올랐는데, 조기 대선 그림은 점점 틀어만 진다. 이러다간 “김구의 국적은 중국”이란 이가 후보가 되고, ‘국민의힘=극우’ 돌덩이를 짊어지고 뛰어야 할 판이다. 그나마 주자들은 호부호형 못하는 홍길동처럼 대선의 ‘대’자도 입에 올리지 못한 채 엉덩이만 들썩인다.

어디서부터 어긋났을까. 국민의힘은 세 가지를 착각했다. 업둥이라 얕본 윤석열의 ‘생존 맷집’을 간과했고, 통제 불능인 극우의 행동력을 ‘보수 결집’이라고 스스로를 기만했다. 계파의 간교함도 너무 어설피 봤다. 삶에서 ‘오만한 것은 죄고, 연민은 짐’인데, 오만하다 뒤통수 맞고 연민하는 척하다 망했다.

“대통령이 ‘나를 밟고 가라’ 해야 하는데…” 국민의힘은 윤석열이 ‘순교’를 연기하기 바랐다. 하지만 그는 그럴 뜻이 전혀 없다. 체포 당일 의원들에게 시전한 “정권 재창출을 부탁한다”는 비장함은 그가 쏟아놓은 숱한 거짓의 하나에 불과했다. 윤석열은 일관됐다. 자신 때문에 계엄에 나선 부하들을 모두 바보나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수족 같던 김용현에겐 ‘대신 죽으라’ 명한 듯 굴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자신과 김건희뿐이다. 어차피 국민의힘은 그에게 숙주였을 뿐, 오랜 인연도 애정도 없다. 위기 앞에 더욱 황당해지고 우악스러워지는 고약함도 잊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의 ‘인질’이 됐다. “보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왕따”라는데 아직 관저든 옥이든 안 간 이들은 밤잠을 설치고 있을 게다.

오더 앞에 줄서던 당원들과 극우는 종자부터 다르다. 집단으로 교신하며 완력을 행사하는 그들을 ‘통제 가능’이라 만만히 여긴 착란의 대가는 참혹하다. 국민의힘이 ‘확성기’ 노릇 하는 동안 덩치가 커진 그들에게 오히려 질질 끌려가는 형국이 되었다. 의원들이 극우 집회를 찾아 큰절을 하는 판이니, 양극단의 발호 속에 “전광훈과 김어준에 머리 조아리는 정치를 하게 될 것”이란 여의도발 공포 드라마가 국민의힘에선 현실화했다.

친윤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업둥이와 함께 당 중심을 꿰차고 단맛을 보았는데 순순히 뒷방으로 가겠는가. 옥중을 들락거리며 내란범의 집사가 된 그들은 당이 부여잡고 있던 “비상계엄은 잘못”이란 마지막 명줄조차, “나라 살리는 계엄”이라며 싹둑 잘라냈다. 권력을 놓칠세라 나라나 당이야 어찌되건 상관 않는 몰염치에 몸서리가 쳐진다.

탈출구는 있을까. 국민의힘의 가장 큰 착각은 ‘하늘이 무너져도 살길이 있을 것’이란 안일함일 것이다. 윤석열과 극우의 포박으로부터 벗어날 길은 거의 없다. 이대로면 사회주의에 대한 미움으로 나치라는 거악을 방조해 자신들도 나라도 소멸시킨 독일 바이마르 보수의 운명만이 기다린다. ‘복귀’의 망상회로를 돌리고, 탄핵돼도 후계자를 낙점할 거라는 허황한 자신감에 찬 윤석열과 그들 세력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선거 감독’까지 하려는 극우의 지분 요구에 저항할 힘은 있는가. 대선이 열려봐야 말짱 헛일이다. 어찌어찌 다시 권력을 잡는다 해도 그건 윤석열과 극우의 차지다. 보수정치는 숨을 멈추고, ‘극우’ 모르핀에 중독된 좀비정당만 남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착각을 연발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 가지다.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선택한 착각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할 일은 용기를 내는 것뿐이다. 나쁜 것을 나쁘다 하고, 폐허에서 새집을 지을 용기 말이다. 대들보가 다 썩어 문드러졌는데 허물지 않을 수 있나. 국민의힘이 겁쟁이가 될지, 남은 용기나마 끌어모을지, 국민들은 냉혹한 시선으로 결말을 기다리고 있다.

김광호 논설위원

김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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