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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학으로 살펴보는 음모론

[김범준의 옆집물리학]통계학으로 살펴보는 음모론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둥근 지구 사진을 보여주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증거도 이들의 강한 신념을 바꾸기 어렵다. 진화는 거짓이라는 주장도 비슷하다. 명확한 온갖 증거도 창조론자의 신념을 꺾기 어렵다. 찾을 때까지 노력하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증거 사이의 빈틈을 찾고, 그것도 어려우면 진화의 증거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선거 결과가 자신이 이전에 확신했던 것과 크게 다르니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는 주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정이 없었다는 것을 명확히 보이지 못했으니 부정이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없다는 것을 보이지 못했다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1952년 버트런드 러셀은 지구와 화성 사이에 너무 작아 어떤 망원경으로도 결코 볼 수 없는 찻주전자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소개한다. 이런 찻주전자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반증하지 못했으니 이 찻주전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다. 부정선거가 아니라는 것을 100% 확률로 증명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해서 부정선거가 있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들으면 난 우주 어딘가의 찻주전자를 떠올린다.

톰 치버스의 <모든 것은 예측 가능하다>는 요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베이즈 통계학과 관련된 멋진 책이다. 베이즈 통계학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일상에서 우리가 진행하는 사고 과정을 닮았다. 우리는 먼저 세상에 대한 어렴풋한 예측에서 시작해 실제 정보를 반영해서 다음 예측을 조금씩 다듬는 과정을 이어간다. 베이즈 통계학은 이 과정을 ‘사전확률에 가능도를 반영해 형성되는 사후확률’로 기술하지만, 그리 어려운 얘기는 아니다. 현실 이해의 정확도를 늘릴 때 우리는 늘 이렇게 추론한다.

동전 던지기 전 앞면의 확률을 물으면 우리는 50%라고 답한다. 이 확률이 사전확률이다. 두세 번 던져 계속 앞면이 나왔다고 사전확률 50%를 크게 바꾸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얼마든지 우연으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백번 던졌는데 모두 앞면이 나온다면 어떨까? 당신에게 이 동전을 주면서 한 번 더 던져 뒷면이면 3만원을 줄 테니 1만원을 걸겠냐고 묻는다면? 우리 대부분은 백번 모두 앞면이 나왔다면 양면이 둘 다 앞면으로 표시된 이상한 동전이거나 이 사람을 마술사 혹은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 내기에 돈을 걸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이처럼 처음의 짐작에 실제의 경험을 반영해 세상에 대한 예측을 조금씩 더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을 이어간다. 수식으로 계산하지는 않았지만, 얼핏 나무 사이로 본 무언가가 호랑이일 가능성을 과거의 경험을 반영해 성공적으로 예측한 사람들이 우리의 선조다. 무엇이든 호랑이라고 생각한 선조는 두려워 과일 따러 산에 가지 못했고, 어떤 것도 호랑이가 아니라고 확신한 선조는 결국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1650년 올리버 크롬웰은 한 편지에서 “그리스도의 자비를 빌어 간청하건대 여러분이 틀렸을 가능성도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적었다. 여기서 무엇에도 정확히 0이나 1의 확률을 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하는 베이즈 통계학의 크롬웰의 법칙이 나왔다. 어떤 경우에도 0의 확률을 부여하지 말 것, 심지어 달이 치즈로 이루어져 있을 가능성도 조금은 남겨둬야 한다.

세상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니다.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100%의 사전 확신도, 부정선거가 없었다는 100%의 사전 확신도 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둘 모두에 절대로 0이나 1의 가능성을 부여하지 않은 사전확률에서 출발해서 여러 현실의 경험과 증거를 이용해 처음의 사전확률을 적절히 바꿔 가는 것이다. 당신의 처음 믿음이 객관적 증거와 다르면 기뻐할 일이다. 증거를 반영해 세상에 대한 당신의 이해와 예측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을 기회다.

부정선거 가능성이 아무리 커 보여도, 아닐 가능성도 함께 생각해 보길 바란다. 달이 커다란 치즈 덩어리라고 믿어도, 치즈가 아닐 가능성도 함께 떠올려 보길 바란다. 아폴로 우주인이 달에서 가져온 것이 치즈가 아니라면 달이 암석일 가능성을 높이고, 달이 오래전 지구에서 떨어져 나온 물질로 이뤄졌다는 천문학의 연구를 들으면 치즈가 아닐 가능성을 좀 더 높이자. 부정선거를 확신하는 사람에게 크롬웰의 얘기를 다시 들려준다. “간청하건대 여러분이 틀렸을 가능성도 생각해 보십시오.” 나도 그렇게 할 테니.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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