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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맘의 명품 패딩’보다 중요한 것

입력 2025.02.20 06:00

수정 2025.02.2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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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핫이슈지’ 채널 ‘휴먼다큐 자식이 좋다-엄마라는 이름으로’ 캡쳐.

유튜브 ‘핫이슈지’ 채널 ‘휴먼다큐 자식이 좋다-엄마라는 이름으로’ 캡쳐.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의 수학 학원에 4살짜리 아이를 보내고 돌아서서 차에서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제이미맘’. 그는 아이가 어느 날 과자가 너무 적다며 더 달라고 하는 모습에서 ‘벌써 수를 이용하기 시작하는 영재적인 모먼트’를 느꼈다고 한다. 제이미가 배변훈련에 성공했다는 전화에 감격하고, 제기차기 선행학습을 해야 한다며 ‘소피아맘’에게 소개받았다는 제기차기 과외교사를 만나 면접을 보는 장면이 뒤이어 펼쳐진다.

너무 진지해서 더 우스꽝스러운 광경 가운데 화면에는 제이미맘이 입은 명품 브랜드 패딩점퍼와 자동차 핸들의 외제차 엠블럼이 끊임없이 부각된다. 요즘 유튜브에서 화제를 쓸어모으고 있는 한 예능인의 패러디 콘텐츠 ‘휴먼다큐 자식이 좋다’ 내용이다.

솔직히 말하면 재미있게 봤다. 교육계를 취재할 때 만났던 몇몇 취재원들이 겹쳐 보이는 순간도 있었다. 예능적 과장이 끼어 있긴 하지만 놀랄 만큼 현실을 모사한 콘텐츠라는 생각도 했다. 4살에 수학학원에 간다는 아이를 본 적은 없지만 이른바 ‘영어유치원’이라 불리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 합격을 위해 기저귀를 떼자마자 착석과 연필 쥐기, 알파벳을 공부하는 아이들은 꽤 있다. 제기차기 과외가 실제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줄넘기 학원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도 더 현실 같았던 것은 그 콘텐츠에 달린 반응들이었다. 대치맘들이 ‘긁혔다’(정곡을 찔려서 화가 났다는 뜻의 온라인 유행어), 우아한 척 고상을 떨어대지만 숨길 수 없는 천박함이 있다, 애 학원 보내놓고 카페에서 유난떠는 엄마들 실제로 넘쳐난다… 사교육 과열이 큰 사회문제라는 주제의 기사를 쓸 때마다 비슷한 댓글이 따라붙는 것을 보곤 했다. 공부 못했던 엄마들이 욕심만 많아서 애들을 잡는다느니, 여자들이 애 학원 보내놓고 할 일 없어서 카페에 모여서 수다나 떤다느니. 무슨 얘기를 하든 사교육 문제의 구조적 원인은 지워지고 ‘애 잡는 탐욕스러운 엄마들’이 문제라는 결론이 난다. 극성스럽고 허영심 많은 여자들이 경쟁적으로 애를 잡는 바람에 한국 사교육 시장 규모가 27조원이 넘은 건 아닐 텐데 말이다.

4살짜리들이 학원에 가는 이유는 초등학교 때부터 수학과 과학을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대학입시에 중요한 수학과 과학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는 언어 교육의 적기인 영유아 때 끝내서 본격적인 입시 준비기의 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태어난 지 3년 좀 넘게 지난 아이들이 ‘학습식 영어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해 ‘4세 고시’를 치른다. 초등학교 취학 시기가 되면 또 유명 영어학원의 레벨테스트를 치르는 ‘7세 고시’가 기다린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선행학습과 심화학습을 전문으로 한다는 수학학원의 문을 두르릴 차례다.

이들의 종착지는 의대나 명문대다. 노동시장이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상황에서는 ‘좋은 일자리’에 진입하는 것이 생존하기 위한 지상과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제시된 학습 플랜의 시작점이 생후 36개월부터 시작되는 사교육이다. 최근에는 학령인구가 줄면서 더 어린 아이들까지 소비자로 확보해야 하는 학원 자본의 필요까지 결합했다. 대치동 맘들이 더 극성맞아져서가 아니라 노동시장이 더 양극화되고 사교육 시장이 더 팽창해졌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여성은 가정을 돌보고 아이를 교육시킨다는 성역할을 부여받아 사교육 광풍의 수행자가 되었을 뿐이다.

하루이틀 일은 아닌 것 같다. 돌이켜보면 ‘치맛바람’이라는 말은 오래됐다. ‘헬리콥터맘’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몇 년 전에는 아이를 의대에 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엄마들의 욕망’을 그린 드라마가 선풍적 인기를 끌기도 했다. 재미는 있었지만 이런 걸 사회 비판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치맘’ 패러디 콘텐츠에 등장한 명품 패딩이 중고거래 사이트에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가 오늘도 쏟아진다. 판매량 증가 수치를 확인하고 쓴 기사로 보이지는 않는데 어떻게 ‘판매량이 늘었다’고 쓸 수 있는지 직업병에서 나온 의문이 든다. 더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 건 여기에 따라오는 반응이다. “이 영상 때문에 대치맘들 패딩 못 입는다는 거 보고 진짜 남의 시선을 중시하는구나 생각했다” 창작자의 의도와는 무관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여성들에게 비난이 쏟아진다. 우리가 정말 세상을 좀 더 나아지게 하고 싶다면 이보다는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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