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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죽음, ‘미키’의 자리에 놓인 청년들···봉준호가 ‘SF’로 돌아온 이유

입력 2025.02.23 16:30

수정 2025.02.23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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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진행한 언론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봉준호 감독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진행한 언론 인터뷰를 앞두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봉준호 감독은 원작 <미키7>가 출간되기도 전에 ‘미키’를 만났다. 워너브라더스는 미국 작가 에드워드 애슈턴의 이 소설이 초고에 불과하던 때 판권을 사들였다. 책은 인간을 복제할 수 있게 된 근미래, 얼음으로 뒤덮인 우주행성 개척을 위한 실험체가 된 미키 반스의 이야기다. ‘익스펜더블(exependable·소모품)’에 자원한 그는 거듭 위험한 임무에 투입된다. 그러다 죽으면 ‘프린트(복사)’ 된다. 과거의 감정과 기억을 지닌 채 복제돼 또 험지로 내몰린다.

워너브라더스가 <옥자>(2017)와 <미나리>(2020)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제작사 플랜B에 14쪽짜리 요약본을 보냈고, 플랜B는 이를 다시 봉 감독에게 보냈다. “소설이 좀 기이하니까 이상한 영화를 많이 찍는 저한테 흘러들어온 거죠.”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만난 봉 감독은 작품의 콘셉트에 바로 매료됐다고 했다. “인간적인 얘기를 다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은 그가 영화화를 결심한 이유다.

현실과 ‘거리’를 만드는 SF···‘미키’에 투영되는 어느 청년들

<미키 17> 트레일러 영상 갈무리.

<미키 17> 트레일러 영상 갈무리.

“산업재해 전문 노동자도 아니고, 죽는 게 직업(인 캐릭터)라니. 이상한 거잖아요.”

미키 뒤에 붙은 숫자는 그가 몇 번째 생을 살고 있는지를 뜻한다. 영화 속 주인공(로버트 패틴슨)은 16번의 잔혹한 죽음을 겪은 뒤 그 경험을 안고 재생된 17번째 미키다. 책의 ‘미키7’보다 10번 더 죽은 셈이다. 봉 감독은 “영화는 미키의 성장담이기도 하다”며 “17에서 18은 어른이 되는 숫자이기도 하니, 그 경계선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미키17>은 봉 감독의 여덟 번째 장편 영화다. 공상과학(SF) 영화로는 네 번째다. 전작들은 한강에 괴수가 나타나거나(<괴물>, 2006), 빙하기의 지구를 달리는 열차에 칸마다 계급이 나뉘거나(<설국열차>, 2013), 대기업이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슈퍼돼지를 만들어내는(<옥자>, 2017) 독특한 설정 안에서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인물들이 벌이는 소동을 담아냈다. 각각 정치 현실, 계급 의식, 인간중심주의 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엿보였다.

이번 영화에선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냐는 질문에 봉 감독은 “포크로 메시지를 떠먹여주듯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재미와 아름다움이 우선이라 생각한다”며 “상황과 캐릭터와 말에 관객이 정신없이 끌려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자신을 “사회학을 전공했지만 거대담론을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대신 이상한 디테일이나 구석진 곳에 있는 것들로부터 출발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재출력되는 인간’이라는 콘셉트를 보고 그가 생각해낸 건 현학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질문들”이었다.

출력된 내 몸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 죽어 마땅한 일에 계속 투입되는 게 아프고 고통스럽고 싫을 텐데, 이 사람(미키)의 피부엔 어떻게 와닿을까?

질문의 중심엔 청년 미키가 있다. “미키가 허허실실 웃어서 그렇지, 굉장히 잔혹한 상황에 부닥쳐 있거든요. 비겁한 공동체는 애 하나를 반복적으로 죽게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요. 미키가 중요한 일을 하는데도 오히려 경시하죠.”

<미키 17>의 17번 미키와 18번 미키.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미키 17>의 17번 미키와 18번 미키.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봉 감독은 미키가 처한 자리에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청년들을 놓았다. 그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구의역) 스크린도어에서, (SPC 계열사) 제빵 기계에” 사고를 당한 이들을 말하며 “나열한 사건의 그 자리에 또 다른 분들이 일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키가 복제되는 것이 판타지 같지만 김군 뒤에 박군이, 그 뒤에 윤양이···일자리는 유지되고 인간이 계속 교체되지 않냐”며 “견주어 보면 오히려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게 SF를 찍는 의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무엇이든 영화화를 할 때 시간적 거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SF 현실 같기도 한 12·3 비상계엄 사태를 영화화한다면 어디에 집중할 거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시간적 갭(차이)을 갖고 계엄과 쿠데타를 다룬 <서울의 봄>을 보고서도 (사람들은) 독재자에 치 떨려 하지 않았나”라며 “그나마 44년 전의 일이었구나 (위안했던 이들에게) 이번 비상계엄은 사실 상처고, 정신적인 집단 트라우마”라고 했다. 영화 속 독재자 마셜(마크 러팔로)이 저격당하는 장면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일각의 평에 대해서도 “이미 2021년에 시나리오를 다 썼던 것”이라고 일축했다.

오는 28일 국내 개봉을 앞둔 <미키17>은 2054년 우주에서 펼쳐지는 잔혹하고도 유쾌한 모험담이다. “우주에 가봤자 여전히 찌질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그래서 정겹기도 한”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현재’를 찾아내는 건 관객의 몫이다.

<미키 17> 티저 포스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미키 17> 티저 포스터.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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