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특파원이 본 <너자2>
애국주의 열기가 흥행 부추기지만
독창적 고전 재해석에 사회비판도

영화 <너자2> 장면 갈무리
중국 애니메이션 <너자2: 악마의 아이가 바다를 휘젓다>의 기록적 흥행이 중국 안팎에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낳고 있다.
중국에서는 역대 글로벌 박스오피스 10위권 진입을 강조하며 ‘소프트파워의 쾌거’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애국주의가 흥행을 이끌고 있다고 본다. 베이징에서 확인한 <너자2> 열풍은 애국주의 영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중국 문화산업 역량의 진화가 돋보였다.
<너자2> 애국주의 열기 속 영화는 호평

<너자2> 공식 포스터
박스오피스 사이트 덩타에 따르면 <너자2>는 23일 세계 시장에서 135억위안(약2조7000억원)을 벌어들이며 역대 글로벌 흥행수익 8위를 유지했다. 애니메이션 분야로 한정하면 <인사이드 아웃2>를 제치고 세계 1를 기록했다.
미국에서는 영화관 722곳에서 상영 중이며 홍콩,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에서도 개봉했다. 한국과 일본에도 조만간 상영된다. 흥행수입의 99%가 중국에서 발생하지만 자국 영화 흥행작이 나온 것도 오랜만이다. 중국에서는 개봉 8일 만인 지난 6일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애국주의 영화 <장진호>를 제치고 역대 흥행 1위작에 올랐다.
중국은 <너자2>의 흥행에 한껏 고무돼 있다. 관영매체 글로벌 타임스는 “<너자2>의 성공은 수익을 넘어 중국 문화의 혁신과 발전을 상징한다”고 보도했다. <너자2>는 중국 고전소설 <봉신연의>를 원작으로 중국의 기술력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다. 첨단기술과 서사 양쪽에서 더욱 발전한 모습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너자2>의 흥행은 ‘딥시크 돌풍’과 더불어 춘절 연휴 시작된 양대 쾌거로도 불린다.
글로벌 흥행수익 7위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19억2100만달러)와 격차가 6000만달러이다. 기업·학교 등에서 단체 관람이 이어지고 있어 순위가 오를 전망이다. <너자2>의 경쟁상대인 <캡틴 아메리카 : 브레이브 뉴 월드>(캡틴 아메리카4)를 불매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BBC, 로이터통신, 도이체벨레 등은 <캡틴 아메리카4> 불매운동 등을 거론하며 “애국주의가 <너자2>의 흥행을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 전통문화에 자부심을 품는 젊은 세대들이 N차 관람(여러 번 보기)을 하며 흥행 열기를 주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영화 자체에 대한 리뷰는 호평이 많다. 호주 매체 <더 컨버세이션>은 “시각적 스펙터클도 뛰어나며 매 순간 스릴 넘치는 전투 장면으로 구성돼 있다”며 “중국의 신화와 역사, 철학을 대담하게 해석했고 자유의지라는 주제가 중국을 넘어서 공감을 사고 있다”고 전했다.
‘태어나선 안 될 존재’란 고통에 대답하다

영화 장면 갈무리
너자(哪吒·나타)는 <봉신연의>와 <서유기>에 등장하는 전사이다. 불의 바퀴를 타고 날아다니는 소년의 모습으로 주로 등장한다. 중국에서는 손오공만큼 유명하다. 손오공과 나타 모두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가 전래하는 과정에서 힌두교·불교·도교 신화가 섞여 탄생했다. 막강한 전투력을 가졌으면서 말을 안 듣고 반항적이라는 점도 나타와 손오공의 공통점이다.
양위 감독이 연출한 <너자2>는 중국에서 익숙한 나타의 이미지를 한 번 더 비튼다. 나타는 천방지축이지만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콤플렉스를 가진 아이다. 들창코에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 다니는 외모도 전형적 주인공 모습과 거리가 멀다.
나타는 천계의 실수로 태어났다. 천계를 이끄는 신선 원시천존은 천 년 동안 쌓인 천지일월의 정기를 빛의 기운을 담은 ‘영주’와 어둠의 기운을 담은 ‘마환’으로 나눠, 영주는 인간으로 환생하게 하고 마환은 파괴할 예정이었다. 천계 내부 음모와 실수로 계획이 틀어져, 마환은 인간 부모에게 보내져 나타가 태어났고, 영주는 사악한 종족이라고 해저 감옥에 갇혀 있는 동해용족의 아들 ‘오병’으로 태어났다.
마환의 화신으로 태어난 아이에게는 마왕이 될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이 운명과 맞서는 것이 나타의 인생 과제다. 나타는 부정적인 자기 인식부터 형성했다. ‘내가 사고를 쳐서 부모님은 남에게 사과하러 다니고 위험에 처한다’ ‘나 같은 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인사이드 아웃2>에 등장하는 사춘기 청소년의 불안한 심리와 비슷하면서도 더 가혹하다. 러닝타임 초반 홍콩 영화에서 익숙한 슬랩스틱 코미디는 이런 주제의식으로 어두울 수도 있는 분위기를 상쇄한다.
영화에서 강조하는 것은 가족이다. 나타와 오병은 처음에는 적이었지만 서로의 가족을 구해주며 친구가 된다. 천계의 인정을 받아 신선이 되려고 하지만 천계의 음모와 위선을 깨닫고 맞선다. 이 과정에서 가족의 사랑과 희생을 토대로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신을 완성하고 자유로운 삶을 찾게 된다는 것이 <너자> 시리즈의 줄거리이다.
<쿵푸 팬더>가 판다 포의 양아버지와 친아버지가 포를 지켜보며 지지해주는 모습으로 가족애를 강조한다면 <너자2>의 부모들은 더 큰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여러 중국 관객들은 어머니가 나타를 위해 희생하는 장면을 심금을 울리는 대목으로 꼽는다. 베이징의 40대 중국어 교사 비앙카 우(가명)는 “초반부의 코미디 장면이 재밌었으며, 후반부에는 가족애를 강조해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반면 온라인 영화 플랫폼 더우반에는 1979년 방영된 동명의 애니메이션과 비교해 “봉건적·가부장적 가족에 반항한 것으로 유명한 신화적 인물을 가족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효자’로 다시 써냈다”며 “중국의 문화적 보수주의를 반영한다”는 리뷰도 올라왔다. 현재 중국의 보수성은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 자체가 아니라 가족을 다루는 방식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작 <봉신연의>와 각종 전설에서 나타는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게 그려진다. 일본 작가 후지사키 류가 1990년대 연재한 만화 <봉신연의> 역시 이를 따랐다.
미국 패권·안면인식 기술 등 다양한 풍자

<너자2> 천계 옥허궁. 펜타곤의 형상을 하고 있다. 영화화면 갈무리.
영화 곳곳에는 미국에 대한 풍자가 담겨 있다. 신선들을 다스리는 곳인 천계 옥허궁은 미국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과 닮았다. 천계 일원임을 증명하는 옥패에는 독수리 문장이 그려져 있고, 신선들이 먹는 단약을 제조하는 솥에는 달러 표시가 새겨져 있다.
인간뿐만 아니라 짐승이나 돌과 같은 사물도 오래 수련하고 도를 깨우치면 선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천계는 짐승·사물 출신은 요괴라 부르며 차별하고 선인의 자격을 쉽게 주지 않는다. 천계의 요괴차별은 원작 <봉신연의>에도 있는 설정인데, 이를 ‘선한 국가와 악한 국가’를 나누는 미국에 대한 비판으로 재해석됐다.
중국에서는 검열 영향으로 체제에 도전하는 내용을 다룬 작품을 제작하기 쉽지 않다. <너자2>는 권위에 도전하는 반항아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도전 대상을 미국으로 은유했다. 이는 안전 장치이자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30대 직장인 류모씨는 “미국에 대한 비판이 통쾌했다”며 “온라인에서도 이 영화와 관련해 가장 큰 토론거리”라고 말했다.
미국이 영화의 유일한 풍자 대상은 아니다. 영화에는 안면인식 기술에 대한 풍자도 등장한다. 천계의 요괴차별에서 중국 내부의 문제와 부조리를 발견하는 이들도 있다. 표범 요괴 신공표가 천계로부터 거듭 선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목을 두고 “소도시 공무원 응시생의 삶”이라 표현한 누리꾼도 있었다. 관객들이 보기에 다양한 풍자 요소가 있다.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라는 고통에서 해방된 나타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다짐한다.
외모가 추한 요괴들이 힘을 합쳐 미형의 천계인 군단을 물리치는 전투 장면도 다른 애니메이션에서 보기 드문 설정이다. 드래곤이 아닌 동양 용이 대거 등장해 전투를 벌이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중국 애니메이션 굴기로 이어질까

영화 <너자2> 속 나타가 자신의 육체를 완성해 ‘육비’ 상태로 변한 모습. 영화 홍보 영상 캡처.
중국 애니메이션 업계가 <너자2>의 성공을 계기로 미국과 일본이 양분한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에 파란을 일으킬 것인지도 주목된다.
중국에서 흥행수익의 99%를 거뒀는데도 세계 박스오피스 10위권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막대한 중국의 내수 경쟁력을 반증한다. 중국의 콘텐츠 산업의 기술력은 이전부터 뛰어나다고 평이 자자했다. 남은 문제는 서사가 빈약하다는 점이었다. 지난해 게임 <검은 신화 오공>이 검증된 고전을 깊이있게 재해석해 서사를 연출하는 데 성공했으며 <너자2>가 뒤를 이었다.
제작비를 많이 쏟아부어도 잘 만들면 수익을 회수할 수 있다는 사례가 연달아 나오면서 업계에 자신감을 불어놓고 있다. 자오즈(만두)란 예명을 쓰는 양 감독이 원래 의대생이었으나 꿈을 좇아 애니메이션 업계로 투신했다는 사실도 조명되고 있다.
<너자3>도 제작될 것으로 보인다. <봉신연의>에 등장하는 ‘천계대전’이 <너자2>에서 계속 언급됐기 때문이다. 천계대전은 요괴 달기에게 빠진 폭군 주왕을 몰아내는 전쟁이다. 역사상의 은·주혁명을 바탕으로 하지만 최고 지도자 교체를 다루는 내용이라 당국에 민감하게 여겨질 가능성이 있다. 제작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그려낼지 관심을 모을 전망이다. 나타의 탄생기를 다룬 <너자1>은 2019년 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