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어른들은 감정 표현이 서툴렀다. 좋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는 특히나 쑥스러워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친구에게 ‘우리 아들 이번에 대학 가’라며 에둘러 아들 자랑을 했다. 겸연쩍은지 ‘내가 팔불출이 다 되었네’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땐 자식이 대학 가는 것도 자랑거리였다.
예전엔 그랬다. 자식 자랑, 아내 자랑, 남편 자랑 하는 사람은 좀 덜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았다. 때로는 ‘팔불출’이라고 놀렸다. ‘팔불출’은 어리석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 정서상 자신이나 집안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의 미덕 때문일까. 아내, 자식 자랑 하려면 팔불출 소리는 들을 각오를 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요즘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예쁘게 잘 드러낸다. 자랑이 과하지 않으면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맞장구치며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놀림조로 말하던 팔불출에도 살짝 친근감이 붙었다. 가까운 사이에 장난스레 호감을 표현하는 말로도 쓴다.
스스럼없이 표현하다 보니 지나친 면도 나타난다. 겸손과 칭찬을 가장한 무례함이 엿보인다. 그 속에 모두가 바보와 깡패가 된다. 언론도 덩달아 가세하며 딸 바보, 아들 바보에 어깨 깡패, 실물 깡패까지 세상에 세세히 전달한다.
바보는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거나 욕할 때 쓰는 말이다. 자식을 좀 과하게 사랑한다고 딸 바보, 아들 바보일 순 없다. 심지어 다른 사람들도 당사자를 딸 바보, 아들 바보라 부르며 웃고 즐긴다.
바보는 깡패에 비하면 애교 섞인 말이다. 폭력을 쓰면서 행패를 부리고 못된 짓을 일삼는 무리인 깡패가 아름답게 포장된다. 근육질의 어깨를 지니거나 미모가 뛰어나면 어깨 깡패, 실물 깡패라고 한다. 깡패 소리를 듣고도 즐거워한다.
어쩌면 이 모두가 웃자고 하는 말인데 쓸데없이 유난을 떠는 건지도 모른다. 하기는 내가 별거 아닌 말을 심각하게 전달하는 재주가 있기는 하다. 그래도 깡패는 깡패고, 바보는 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