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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은 부당한 명령이라도 복종해야 하나

전시나 이에 준하는 상황 아닌 데다
민주 질서에 반하는 명령엔 항명해야
비상계엄 사태 중간간부급 군인들
복종 의무 앞세워도 ‘면죄’ 안 돼

12·3 불법계엄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는 국회의사당에 들어간 장병들이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대해 소극적 행위 내지 자제로 대처한 것이었다. 군형법 제44조는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을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부당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은 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은 제25조에서 “군인은 직무를 수행할 때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국가공무원법 제57조 역시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만약 직무상 명령이라도 그것이 부당할 때라면 어쩔 것인가.

대법원은 1999년 안기부 직원의 정치 관여에 관한 사건에서 “공무원이 그 직무를 수행함에 즈음하여 명백히 위법 내지 불법한 명령을 받았을 때 이는 벌써 직무상의 지시명령이라 할 수 없으므로 따라야 할 의무가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기소된 후에야 ‘부당한 명령이었으니 처벌할 수 없다’고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명시적 규정이 법률에 있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겪자 김현정 등 의원 10인은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대해 군인이 (적극적으로) 거부할 권리를 명문화”하는 조항을 넣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여기서 ‘부당한 명령’은 “①위법임이 명백한 행위를 내용으로 하는 명령 ②인간의 존엄성 또는 인권을 해하는 것이 명백한 행위를 내용으로 하는 명령 ③명백히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내용으로 하는 명령 ④임무와 관계없이 오로지 사적 목적만을 위한 것임이 명백한 명령”으로 열거돼 있다.

그럼 상관의 부당한 명령에 항명하거나 불복종하지 않고 따른 경우에는 아무 탈이 없을까. 아니다. 순명하여 범죄를 저지른 때에는 처벌을 면할 수 없다. 대법원은 12·12 사건에 관한 1997년의 판결에서 반란군이 육군참모총장과 특전사령관을 체포한 행위에 대해 “상관의 위법한 명령에 따라 범죄행위를 한 경우에는 명령에 따랐다고 하여 부하가 한 범죄행위의 위법성이 조각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명령이 부당한지 아니면 정당한지 판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부당성이라는 불확정개념은 정의를 내리기도 어렵고 설령 정의를 내린다고 해도 현장에서 확실한 지침이 되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여러 역사적 실례를 연구하고 사례마다 올바른 행동기준을 제시해 장병들을 교육할 수밖에 없다.

‘부당성’이 문제 된 사건 중 두드러지는 것은 군사적 복종이 도덕적 판단이나 정치적 판단과 충돌하는 경우다. 전시에 전장에서의 급박한 상황에서 군인이 상관의 명령을 부당하다고 하여 항명하는 일은 거의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명령이 집단살해죄나 ‘인도에 반한 죄’ 등을 저지르라는 내용이라면 항명하여야 옳다. 이와 달리 전시나 이에 준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명령의 부당성은 발령자나 수명자의 직위가 높을수록 넓게 해석해야 한다. 특히 그 명령이 헌법에서 말하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무너뜨리는 내용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번 12·3 계엄에서처럼 평시에 군의 무력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위헌적으로 또는 위법적으로 이용당하는 경우에는 어떨까. 적어도 상급 지휘관 이상의 군인은 명령의 합헌성이나 합법성에 관해 엄격한 판단을 해야 옳고, 이후에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항변으로 죄책을 면할 수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이번 쿠데타의 모의와 실행에 관여한 것으로 보도된 사령관급 직위의 군인은 명령이 정당한지 여부를 따질 것도 없이 내란죄의 중요임무종사자로 처벌될 터이나, 그 아래 수사단장 등 직위의 군인들도 결코 명령 복종 의무를 내세워 처벌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지신경과학자 에밀리 캐스파는 저서 <명령에 따랐을 뿐 !?>에서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명령이란 게 죄책감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며 부당한 명령에 볼복종하는 신경인지적 메커니즘의 핵심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과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하나 덧붙인다면 아마 양심일 것이다. 2020년 6월 조지 플로이드의 억울한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백악관에 접근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 밀리 합참의장을 불러 군대를 투입해 시위대에 발포하라고 지시했다. 밀리는 “이 XX 루저(loser)놈아!”라는 욕설까지 듣고서도 끝내 이에 따르지 않았다. 그는 퇴임 연설에서 “우리는 개인에게 선서하는 게 아닙니다. 헌법에 선서하고 미국이라는 이념에 선서합니다. 우리는 죽음으로써 이를 지킬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왜 이런 군인을 보기 어렵나. 참담하다.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정인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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