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로 추켜세워진 대학교 일부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어깨 펴고 다녔을 그 캠퍼스에서 대통령 탄핵 반대 성명서를 읽고 시위했다.
민주사회 시민에게 지금의 대통령 탄핵 심판은 수개월의 재판 시간도 아까울 만큼 간명한 문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그대로, 불콰해진 얼굴의 그가 TV에 나와 별안간 계엄을 선포하고, 여의도 하늘로는 연신 헬기가 날아들더니, 곧이어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 본청 유리창을 깨고 쳐들어가는 ‘난리’를 생생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뒤이은 포고령은 정적에 대한 ‘종북몰이’를 일삼던 자들이 오히려 북한을 ‘추앙’하듯 써 내려간 망나니의 언어로 꽉 차 있었다.
어떤 말로 정당화해도 이 목불인견은 곤히 잠든 한밤중에 들이 닥쳐진 흉포한 몽둥이질이다.
쪼개져 ‘적’이 된 혈육을 머리에 얹은 채 살아온 모진 운명의 국민이기에 더 나은 의료, 더 편한 노후, 무상 공교육 등 더 좋은 삶을 희생하며 묵묵히 국방비를 감당해왔다. 이렇듯 혈세로 무장된 군인들이건만 정작 ‘적’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를 상대로 ‘피’ 같은 돈으로 이룬 국방력을 삽시간에 ‘물’로 만들었다.
그가 대통령직에서 쫓겨날 이유가 이보다 더 명백할 수는 없다. 헌재에서 따지는 국무회의 개최 여부나 체포자를 적은 메모지의 숫자 따위는 ‘법 기술자’에게나 중요할 뿐, 자기 돈 들인 군화로 안방을 짓밟힌 시민에게는 탄핵만이 답이다.
작년 영국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뽑은 ‘올해의 단어’는 ‘뇌 썩음’(brain rot)이다. 한 번의 확인만으로도 드러날 진실 대신, 조회 수로 돈 버는 자들의 짜깁기와 거짓말을 그대로 믿음으로써 스스로 생각하는 ‘지적 능력’을 퇴화시킨 상태를 뜻한다.
최고 권좌에 앉은 대통령이 주체적 사고는 고사하고 취임 전부터 무속의 영향에 놓인 것 같더니, 여당 정치인들에게는 ‘잘 정리된’ 유튜브를 챙겨보라 했고, 자신도 체포 직전까지 유튜브로 정세 파악 중이었다 한다. 다양한 정보와 열띤 토론 등을 통해 얻을 최고 권력자의 명민한 판단력은 그에게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었나 보다. 미신과 유튜버의 ‘짤’에 확증편향된 뇌로 스스로 생각할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바꿀 수 있기에, 불행한 일이기는 하나, ‘생각 없는’ 대통령이 한국 사회에 재앙은 아닐 것이다.
그의 대선 공약 ‘여.성.가.족.부.폐.지’에 열광하던 한 청년에게 이유를 묻자 “혈세 낭비가 심하고요,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내고 있잖아요”라 했다. 그 ‘말도 안 되는 정책’이 무엇일지 다시 묻자 그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했다.
이렇듯 주어진 정보의 근거와 진위 파악도 없이, 주입된 대로만 주장하며 마침내 법원까지도 부수는, 미래의 의사결정권자 ‘어떤’ 청년은 한국 사회에 큰 재앙이다. 몇몇 대학교에서 벌어진 이번 탄핵 반대 시위 역시 인재(人材)로 호명된 이들에 의한 인재(人災)다. 민주적 법과 제도로는 안 통하니 군인의 총칼로 다스리겠다는 대통령을 옹위하는 대학생은, 극소수일망정 분명 재앙이다. 스스로 사고하기보다 쉽게 선동되는 청년이 많아지는 지금, 새 학기를 여는 맘은 복잡하다. 스스로 생각하기, 이번 봄 학기 강의의 핵심어다.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