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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년 후를 본 백남준과 SF

김연아 선수를 통해 피겨스케이팅을 배웠듯 백남준이라는 이름 덕분에 비디오 아트를 알았다. 텔레비전 1003개를 탑처럼 쌓은 ‘다다익선’의 작가, 공연 중에 관객석의 존 케이지에게 가서 넥타이를 잘라버린 괴짜,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교과서에 나오는 예술가. 그 이름이 너무 익숙해서 나는 오히려 백남준의 작업이 얼마나 비범하고 흥미로운지 실감하지 못했던 듯하다.

<백남준: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 중 ‘자서전’은 백남준 자신이 수태된 해부터 시작한다. 각 해의 내용은 대개 한두 줄뿐이다. 그는 1932년에 출생했고, 1933년에 한 살이었고, 다음 해에는 두 살이었다. 그다음에는 세 살이었다. 1년마다 한 살이 늘어난다는 기술은 너무 뻔해서 단조롭기까지 하다. 그런데 연도가 현재를 따라잡고 미래로 넘어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1982년이면 그는 쉰 살이다. 2032년에 살아 있다면 백 살이다. 3032년에는 천 살, 11932년에는 십만 살이다. 백남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10만년 후로 훅 도약한다. 일상적이고 단조롭던 숫자가 우주적 규모의 시간으로 급격히 확장되는 지점이다.

‘5번 교향곡’은 정말로 SF 소설을 연상케 한다. 교향곡 악보라지만 오선지와 음표는 거의 없다. 내용은 주로 지시문이다. 예를 들면 이 곡을 연주한 지 133번째 되는 해에는 베토벤의 133번 대푸가를 연주해야 한다. 지구에서, 달에서, 금성에서, 화성에서. 연주 시간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무한에 가까워진다. 그는 현재를 초월하는 사변적 연출로 독자·관객·청중을 낯선 풍경으로 데려간다.

전위적인 시도를 거듭하던 백남준은 자신의 작업을 ‘아방가르드의 고고학’이라고 표현했다. 기성에서 벗어나는 예술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아방가르드인데, 이제까지 누적된 예술을 탐구하며 작업한다는 점에서 고고학적이다. 이는 SF 창작과 상당히 공통점이 있다. SF는 새로운, 낯선, 도래하지 않은 세상을 보여준다. 이미 존재하는 요소만으로는 SF가 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하므로 ‘현재’의 바깥을 기술하려면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을 토대로 삼을 수밖에 없다. 미래를 추론하기 위해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재료는 현재다. 백남준의 작업은 SF와 같이 현재에 잠재하는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시연한다.

눈앞의 현재보다 먼 곳을 바라보는 방법으로 백남준은 텔레비전에 주목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텔레-비전은 멀리 본다는 뜻이다. 멀리 보는 건 텔레비전을 본다는 것이다. 백남준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최초로 위성 중계를 이용한 국제적인 실시간 텔레비전 방송이었다. 조지 오웰은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서 빅 브러더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데 텔레스크린을 사용한다. 백남준은 1984년의 텔레비전을 다중을 연결하는 매체로 봤다. 당시만 해도 인공위성은 냉전의 색깔이 짙었던 데다 실시간 국제 방송에 따르는 협업, 번역, 통신상 난점을 고려하면 ‘오웰’은 어마어마하게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그런데도 백남준은 오웰에게 ‘한 방 먹일’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위성을 일종의 축포처럼 활용했다. 지금 보기에도 과감한 시도다. 10만년 후를 이야기하던 작가의 유산에,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낯선 미래가 있다.

심완선 SF평론가

심완선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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