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을 따르지 말고, 군중이 당신을 따르게 하라.”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가 한 말이다. 대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강력한 리더십과 고집불통이다. 굳센 뱃심이 선한 방향으로 작동되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여러 사람이 피곤하다. 대처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나뉜다. 그녀는 문화예술 예산을 삭감하기도 하여 비판을 받았다.
예술에 대한 그녀의 무관심과 고집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런던 국립미술관에 소장된 반 고흐의 ‘국화(菊花)’를 보고 싶다고 말했던 그녀는 고흐의 또 다른 해바라기 작품이 경매에서 기록적인 가격에 팔리자,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놀랍지 않나요? 반 고흐의 ‘국화’에 지급된 금액 말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글래스고 미술관장 줄리언 스펄딩이 정중히 바로잡아 주었다. “국화가 아니라 해바라기입니다. 총리님!”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곧바로 그녀가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또 그 그림이 고흐가 그린 최고의 ‘국화’도 아니잖아요.”
그녀는 ‘해바라기’를 ‘국화’로 두 번씩이나 강조하며 우겨댔다. 아니 우긴 것이 아니라, 아예 상대방을 무시한 처사다. 명색이 미술관장이었던 스펄딩은 얼마나 무안하고 난감했을까. 이쯤 되면 남의 이야기를 아예 듣지 않으려는 옹고집이라 할 만하다. 세계적 정치가이자 최고의 고등교육을 받은 영국 총리 대처가 한 말이라고 쉽게 믿기 어렵다. ‘설마 그럴 리가?’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에피소드는 영국의 유력 일간지 ‘텔레그래프’와 ‘인디펜던트’에도 실린 내용이므로 믿을 만하다.
반 고흐는 흔히 해바라기 화가로도 알려져 있다. 이때 고흐의 ‘해바라기’는 예술의 영역도 아니고, 식물학적 영역도 아니다. 그저 ‘상식’의 문제다. 정치도 상식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녀가 비판받는 것도 그녀의 정치 행위가 때로는 ‘비상식적’이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아무리 해바라기라고 말해도, 그녀에게는 그것이 국화였다. 해바라기나 국화나 그게 그거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국화로 확신했을까? 그녀가 예술에 무관심했던 것은 바로 예술이 자신의 확신을 파괴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후대 사람들은 해석한다.
자신만의 고무줄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확한 정보가 자신의 확신을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대처의 일화를 생각하면서, 단것만 삼키려는 확증편향 속의 닫힌 사회를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