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오늘(25일)이다.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 변론이 11차로 마무리된다.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12월 14일) 이후 73일, 비상계엄 선포(12월 3일) 이후 84일 만이다.
윤석열이 직접 최후 진술에 나설 거라고 한다. 사과를 하든, 하야를 선언하든 관심없다. 윤석열의 ‘말’은 무의미하다. 텅 비어 있다.
국회가 무장 계엄군에 침탈당하는 모습을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목격했다. 윤석열은 그럼에도 잡아뗐다.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지시를 했니 지시를 받았니 뭐 이런 얘기들이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달 그림자를 쫓아가는 느낌”(지난 4일 5차 변론). “경비와 질서 유지를 하러 간 군인들이 오히려 시민들한테 폭행을 당하는 상황이었다”(지난 11일 7차 변론).
윤석열의 ‘아무 말 대잔치’는 오로지 선동에만 효용을 발휘한다. 그의 궤변과 책임 전가는 극우세력의 사법 모독 행태를 부추기고 있다.
일부 지지자들은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집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집권여당 국민의힘은 조작된 사진을 근거로 ‘문 대행이 성착취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다’고 주장했다가 사과했다. 대통령실 출신 강승규 의원은 문 대행 탄핵안을 내겠다며 의원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니경원 의원은 헌재를 “국정마비 공동정범”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판사 출신이다.
극우의 준동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패배를 예고한다. 16명의 증인 신문 과정에서 12·3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은 분명해졌다.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라는 헌법상 계엄 선포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국무회의 심의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국회 활동을 방해했다. 영장 없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압수수색했다….
본래 패배를 예감하는 이들이 소음을 낸다. 소음이 아무리 요란해도, 도도히 흐르는 헌재의 시간을 멈출 수는 없다.
헌재 헌법연구관 출신인 이황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각국 헌재가 권위를 갖는 배경을 설명한다.
“1951년 독일(당시 서독), 1956년 이탈리아, 1978년 스페인은 각각 나치·파시즘 체제·프랑코 체제 이후 민주헌정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헌법재판소 제도를 도입해 구 체제를 극복했다. 이러한 선례는 1990년대 현실사회주의 체제로부터 독립해 서구식 입헌민주주의 체제를 수립하는 중·동유럽 국가들에 모범이 됐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그러한 과정을 밟아왔다. 각국 헌법재판소는 대체로 민주헌정의 수호자로 인식돼왔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 10차 변론에 참석해 자리에 앉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 헌재 역시 1987년 6·10 민주항쟁의 성과물이다. 출범 후 30여년 간 시민의 기본권을 신장하고, 역사를 바로세우며, 시대 흐름에 맞는 제도 변화를 견인해왔다.
5·18특별법을 합헌으로 결정해 전두환·노태우 단죄의 길을 열었다. 박정희가 유신헌법에 근거해 발동한 긴급조치 1·2·9호에 위헌을 선언했다. 호주제 헌법불합치, 간통죄 위헌,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등을 통해 평등과 인권의 지평을 확장했다.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 탄핵심판’ 선고에 앞서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소회를 밝혔다.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입니다. 재판부는 이 점을 깊이 인식하면서, 역사의 법정 앞에 서게 된 당사자의 심정으로 이 선고에 임하려 합니다.”
이번 윤석열 탄핵심판에 임하는 재판부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터다. 그러니 결정의 향방을 가늠하겠다며 헌법재판관 8명을 갈라치기할 일이 아니다. 보수니 진보니, 법원 내 특정 연구단체 출신이니 아니니 분류하지 말라.
재판관 8명은 고유한 이념 성향을 지닌 개별적 시민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헌법 수호의 사명을 띤, 고도로 숙련된 법률가들이다. 차고 넘치는 파면 사유를 외면할 재판관은 없을 것이다.
8년 전 박근혜 탄핵심판 결정문을 다시 읽는다.
“탄핵제도는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법의 지배 원리를 구현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제도이다.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대통령을 파면하는 경우 상당한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지만 이는 국가공동체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민주주의의 비용이다.”
“주문(主文),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