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웅배의 우주먼지 다이어리]중첩의 시대](https://img.khan.co.kr/news/2025/02/26/l_2025022701000781100082371.jpg)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라는 단어 자체에는 단 하나뿐인 세계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유일한 세계, 독보적인 공간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그러나 천문학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유일하지 않다는 교훈을 얻었다. 지구는 무수히 많은 행성들 중 하나일 뿐이며, 태양 또한 수없이 많은 별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우리은하 역시 끝없이 펼쳐진 우주 속 은하들 중 하나일 뿐이다.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믿었던 인류의 자만심은 이처럼 반복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러한 경험은 결국 “우주조차도 유일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상상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바로 다중우주, 즉 멀티버스(Multiverse) 개념이다.
다중우주는 단순한 공상과학 소설 속 상상에 머물지 않는다. 천문학자들이 이 개념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거시 세계를 설명하는 물리학과 미시 세계를 지배하는 양자역학 사이의 화해를 꿈꾸기 때문이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태초의 우주는 원자보다도 더 작은 크기에서 시작되었다. 미시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아무것도 없는 진공 속에서도 에너지가 갑자기 생겨나거나 사라질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철저히 무작위적이고 우연적이다. 다중우주는 우주를 미시적 존재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처럼 극도로 작은 스케일에서 일어나는 양자적 요동 속에서 충분히 높은 에너지 밀도가 형성된다면, 독립적인 새로운 공간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 즉, 우리의 우주 자체도 미세한 양자적 요동에서 비롯되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다중우주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만약 불확정성 원리가 적용된다면 이러한 강력한 에너지 밀도의 형성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수없이 반복될 수도 있다. 우주의 탄생은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수많은 가능성들 중 하나일 뿐이다.
다중우주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또 다른 해석이 있다. 1950년대 물리학자 휴 에버렛은 양자역학의 대표적인 사고 실험인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을 새롭게 해석했다. 기존의 양자역학적 해석에서는 상자 속 고양이가 살아 있을 확률과 죽어 있을 확률이 공존하는 중첩 상태에 놓여 있다가, 관측 순간 확률이 한쪽으로 붕괴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에버렛은 이러한 설명이 어색하다고 느꼈다. 왜 기존의 두 가지 가능성 중 굳이 하나만이 선택되어야 하는가? 그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제안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고양이의 상태를 관측하는 순간 우주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의 우주에서는 고양이가 살아 있고 다른 우주에서는 죽어 있다. 확률이 한쪽으로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관측 행위 자체가 새로운 우주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이를 ‘다세계 해석(Many-Worlds Interpretation)’이라 부른다. 에버렛의 이론은 우주가 무한히 많은 가지를 뻗어나가는 다중우주의 존재 가능성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선택과 우연도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길은 다른 우주 어딘가에서 여전히 펼쳐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에버렛의 다세계 해석은 한때 단순한 수학적 유희에 불과한 이론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을 보면 그의 가설이 점점 더 설득력을 얻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현대사회에선 더 이상 하나의 상식이나 단일한 진리만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만의 우주를 구축하고 스스로 믿고 싶은 대안적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중요한 사회적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사람들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된 또 다른 현실을 택한다. 결정에 환호하는 사람들과 절망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매 순간 우리의 현실이 여러 개의 대안적 우주를 생성하며 균열을 반복하는 것과 다름없다.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마치 태초의 우주처럼 혼란스럽고 예측할 수 없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의 감정과 행동은 끝없이 요동친다. 중요한 결정이 내려질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해석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무한히 중첩된 다중우주의 한가운데에 존재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단 하나의 세계에서 살아가지 않는다. 상식과 비상식이 공존하는 중첩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지웅배 천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