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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하는 글쓰기

얼마 전부터 글쓰기 강의를 다시 시작했다. 강의 제목은 ‘발견하는 글쓰기’다. 학교나 기관에서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어 연속 강의는 잘 수락하지 않는데 용기를 냈다. 글쓰기는 작은 용기에서 비롯하고 커다란 용기로 마무리되니까. 내가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글쓰기가 내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 쓸 사람들과 함께 초심도 살피고 싶었다. 글쓰기에 입문할 적에 나는 글을 통해 답을 찾으려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글을 쓰고 나면 질문이 남는다는 사실을 안다. 작은 용기가 커다란 용기가 되듯, 작은 질문이 커다란 질문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강의 제목을 ‘발견하는 글쓰기’로 잡은 이유도 글쓰기 자체가 발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글쓰기 전후와 도중에 모두 발견이 있다. 어떤 것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거기에 마음을 내주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관심이 없는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회적 지위나 일확천금이 보장되지도 않는데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음이 동해야 비로소 쓰기 시작하고, 옆에 있는 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마중물을 붓는 일임을 안다. 글을 쓰면서도 발견은 이어진다. 글을 전개하면서 생각이 정교해지기도 하고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다른 데 있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지면’ 위에 한 편의 글을 다 쓰고 나면 내가 몸담고 있던 어떤 ‘국면’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면(面)’은 말 그대로 낯, 얼굴빛, 표면 등을 뜻하는 단어지만, 여기에는 ‘만나다’나 ‘향하다’라는 뜻도 있다. 어쩌면 글쓰기는 내가 나를 만나고 스스로 내면 깊숙한 곳을 향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파고들수록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이 나타난다. 내가 부정하거나 애써 누르고 있던 나일 것이다. 아직 바깥에 제 모습을 선보이지 않은 나일 수도 있다. 갖가지 나를 만나는 장이 바로 지면이다. 그리고 그때 발견한 새로운 나로 인해 삶의 국면이 전환되기도 한다.

글쓰기를 통해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왜 나는 글을 쓰려고 할까, 어떤 글을 쓸 때 충만해지는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뭘까, 하고 싶은 이야기에 걸맞은 형식은 무엇일까, 좋아하는 것에 관해 쓰는데 왜 자꾸 싫어하는 게 떠오를까, 책을 많이 읽어야만 좋은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짧은 문장이 꼭 좋은 문장일까, 완벽하게 드러내는 글과 철저하게 감추는 글 중 무엇이 더 쓰기 어려울까 등 글을 쓸 때면 질문들이 앞다투어 쏟아져 나왔다. 그 끝에 남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다운 글이란 과연 무엇일까.

글쓰기는 이상하다. 답을 찾는 일인 줄 알았는데 하면 할수록 질문만 늘어난다. 먹을 것에 탐닉해서 음식과 맛집에 대해 자주 쓰는 사람의 마음속 어딘가에는 허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허기를 손쉽게 ‘배고픔’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거기에는 충족되지 못한 다른 열망이 있을지 모른다. 단순히 ‘배고픔’으로 간주하기엔 훨씬 더 깊고 아득한 우물이 있을 것이다. 그 우물의 맨 아래까지 내려가는 것, 내려가는 길에서 해소되지 않은 감정을 맞닥뜨리는 것, 그 감정을 고스란히 안고 올라오는 것, 글쓰기는 오히려 이런 일에 가깝다.

글쓰기도 어떤 점에서는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나와 불화하며 나를 수용하기, 발가벗은 나를 마주하기, 겉을 응시하며 속을 꿰뚫기. 글쓰기에서 꾸준함이 중요한 이유가 그저 글쓰기 능력 향상에 있지만은 않다. 내 속을 뜯어보는 것은 으레 아프고 자주 불쾌한 경험이다. 모든 발견이 희열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싫고 못마땅하고 밉고 못생긴 나를 직면하는 데는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글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바깥으로 나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달아나는 척하며 본격적으로 연루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건에.

오은 시인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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