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 ‘나락’ ‘파묘’…배우 김새론을 벼랑 끝으로 내몬 건

지난 19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배우 김새론씨의 발인식에서 영정과 위패가 운구차로 옮겨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22년 음주 운전 ‘유죄’ 판결 후
악의적 언론 보도와 악플 시달려
젊은 여성 유명인에 더 가혹한 잣대
이름 알린 영화 ‘아저씨’ 성공 이후
다양한 필모그래피 쌓는 노력에도
‘문제 일으킨 연예인’ 이미지만 부각
생활고 겪은 현실은 뒤늦게 알려져
유사 피해 막기 위한 논의 계속돼야
집단 괴롭힘이 젊은 여성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패턴이 반복된다. 온라인 마녀사냥은 대상이 사라지면 잠시 자성하는 듯하다가 이내 새로운 표적을 찾아내고, 무차별적으로 조롱과 비난을 퍼붓는다. 마녀사냥은, 여론이 곧 가치인 ‘나락’ 문화 및 과거의 잘못까지 끌어 올리는 ‘파묘’ 행위와 결합하며 나날이 집요하고 악랄해진다.
지난 16일 배우 김새론이 24세의 나이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고인은 2022년 음주 운전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악의적인 언론 보도와 온라인 괴롭힘에 시달렸다. 복귀를 시도하거나, 배우 이외의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정황이 포착될 때마다 가혹한 반응이 쏟아졌다. 어딘가에서는 ‘음주 운전은 명백한 잘못이고, 고인의 몇몇 행동도 그 당시에는 논란이 될 만’했다며 괴롭힘을 정당화한다. 누군가 부당한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이 곧 그가 무고한 피해자라는 증거는 아니다. 완전무결할 수 없는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멋없는 행동을 하고, 때로 죄를 저지른다. 그런데 누군가는 죄를 저지르거나 실수를 하고도 용서받고 잘 산다. 누군가는 그보다 가벼운 잘못을 저지르고도 매장된다. 김새론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 온라인상에서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멀쩡하게 복귀한 배우들의 이름이 줄줄이 거론되었다. 지적하기 진부할 정도로, ‘마녀’사냥이라는 말이 가리키듯, 사회적 응징은 젠더화되어 있다. 심지어 여성 연예인들은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그저 사회적 이슈에 무심한 태도를 보였거나, 밤길 조심하라고 말했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일자리에서 쫓겨난다. 고인의 경우 유독 언론의 괴롭힘이 극심했기에, 사망 이후 사이버 레커와 언론의 보도 윤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틀리진 않았으나 원론적이다. 언론이 그토록 고인을 물고 늘어진 것은 결국 그만큼 조회 수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대중이 괴롭힘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젊은 여성’을 괴롭히는 폭력을 모두의 놀이로 만드는 방식과 문화를 파고들어야 한다.
어리고 젊은 여성을 뜻하는 ‘소녀’는 글로벌 대중문화의 별이다. 최근 20년 동안 아이돌 가수, 스포츠 선수, 배우 등이 일으킨 일명 ‘걸파워’ 현상은 당사자인 여성들에게 이중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김현경(2016)은 소녀들이 젊음, 건강함, 화려함을 의무로 강요받으며 규범적인 이미지를 벗어나는 순간 혐오의 대상이 된다며, 소녀에 대한 열광이 실은 ‘소녀들의 수난 시대’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유명인인 소녀가 소위 ‘민심’을 잃고 비난의 대상이 될 때 대중이 동정이나 연민 대신 이를 고소해하고 조롱하는 현상에 주목하였다.
‘샤덴프로이데’는 남의 불행이나 고통을 보면서 느끼는 기쁨을 일컫는 독일어 표현이다. 요즘 대중문화는 이 용어로 많은 부분이 설명 가능하다. 김현경은 외모를 중심으로 한 이미지가 중요한 방향으로 변화한 미디어 산업 시스템, 압도적인 재능을 지닌 ‘스타’보다는 ‘유명하다는 이유로 유명한’ 셀러브리티들이 늘어나면서 유명인의 위상과 지위가 변화하는 양상을 두루 살핀다. 크로스와 리틀러에 따르면 이제 대중에게 유명인이란 능력이나 재능으로 그 자리에 오른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한번 얻은 이미지로 우연히 유명해졌을 뿐이니 결국 다시 ‘떨어져야’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유명인의 결함을 샅샅이 뒤져서 전시하며 ‘○○○도 결국 별 볼 일 없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사이버 레커 계정들이 그토록 인기를 끄는 이유이다.
따라서 샤덴프로이데의 핵심은 무언가 불공정하다는 감각이다.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데 특별한 취급을 받는 대상에 대한 적의와 분노는 그들을 끌어내릴 때 쾌감뿐 아니라 효능감까지 보장한다. 언론은 악성 민원이나 다름없는 괴롭힘을 폭력이 아니라 논란이라고 부르며 은근슬쩍 피해와 가해의 경계를 흐리고, 여론이라는 표현을 써서 지위를 부여한다. 즐겁지 아니한가, 그런데 옳기까지 하다고! 이런 샤덴프로이데에서 여성, 특히 어리고 젊은 여성들이 더 정밀한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들의 자원이 외모와 섹슈얼리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성과 감성의 젠더화된 이분법처럼, 육체적 아름다움은 열등한 것이기에 여성에게 배정된다. 혹은, 육체적 아름다움이 여성의 가치이기에 열등하게 취급된다. 여성이 외모를 이용하는 것은 “신분적 위계를 거스르려는 시도”이자 편법으로 여겨져 사회적 불편함을 초래한다(소영현). 좀 더 풀어서 설명해보자. 유명인이 되거나 공적 지위를 획득하는 방법에는 숱한 경로가 있다. 그런데 유독 여성에게는 다른 길은 너무 좁고, 섹슈얼리티를 활용하는 길만이 넓고 뻥 뚫려 있다. 전통적으로 그러했고, 남성적 시각 경제의 시대에 이 비대칭은 강화되는 중이다. 여성이 섹슈얼리티를 활용해야 그나마 유명인이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인플루언서 서바이벌 예능프로그램 <더 인플루언서>(넷플릭스, 2024)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출연한 여성 대부분이 육체적 매력을 콘텐츠로 삼는다. 여성에게 외모가 아닌 가치는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외모로 유명해지면 진짜가 아닌 것으로 그 지위를 누린다고 반발하는 것이다. 데미 무어를 오랫동안 팝콘 배우라고 경멸하며 배우로 인정하지 않았던 영화계처럼. 이 환장의 구조에서 여성의 전문성이나 고유함, 능력은 쉽게 폄하된다. 젊음이나 아름다움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가치고, 언제든 대체 가능한 것으로 취급된다. 그래서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를 보호해줄 단단한 팬덤이나, 비난을 무릅쓰고 기용하는 동종업계의 연대를 경험하기 어렵다.
2010년 영화 <아저씨>로 유명해졌지만, 김새론은 반짝스타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의미 있는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심혜경은 ‘김새론: 뉴-걸 혹은 새론-소녀’(2015)라는 글에서 김새론이 “기존과는 다른 소녀성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인권, 사랑, 자유, (성)평등, 여성(타자) 연대 같은 여성주의적인 동시에 민주주의적인 가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하는 소녀상을 재현”한다고 분석했다. 데뷔작 <여행자>나 <아저씨> <이웃 사람> <도희야> <바비> <맨홀> 등에서 그는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폭력에 노출된 소녀이다. 그러나 김새론의 소녀들은 일방적으로 구원받거나 성애적으로 재현되지 않으며 획일적인 소녀 이미지를 탈주한다. 그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더 약한 존재에게 손을 내밀고, 자신이 당했던 폭력을 전유하여 상황을 탈출하는 속임수로 쓰고, 아버지로 상징되는 가부장제나 소녀를 납치하고 매매하는 제도적 폭력에 저항한다. <마녀보감>이나 <만신>에서는 의술을 쓰는 마녀, 무당을 연기했다. 사회적으로 비천한 존재로서 천대를 받더라도,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존재들과 함께하며 자신의 치유 능력을 나눈다. 2015년 삼일절 특집극이었던 <눈길>에서는 일본군 ‘위안부’를 연기하며 “전쟁범죄에 대한 법적·인권적 가치와 정치적 실현을 위한, 역사문제 해결을 위한, 시대적·세대적·젠더적 공감의 여성 연대를 매우 세련되게 상징화”(심혜경)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독보적인 커리어를 쌓았고, 작품을 고를 때도 자신만의 기준이 분명했음에도 배우로서의 가치보다 ‘문제를 일으킨 젊은 여성’의 이미지가 더욱 부각되었다. 국민 아역배우의 몰락이라는 자극적인 서사에 몰입하여, 과거의 영광 속 어린 배우를 실컷 연민하기 위해 현재를 살아가려는 그를 공격했다. <아저씨>에서 오갈 데 없던 소녀가 특수부대 출신 이웃에게 보호받는 서사에 열광하던 대중이, 정작 현실에서는 기댈 곳 없는 어린 여성을 죽음으로 내몬 셈이다.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현실에 분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분노가 범죄를 저지르고도 태연히 복귀하는 권력과 기반을 갖춘 이들이 아니라, 죗값을 치르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에게 쏟아지는 것은 분풀이일 뿐이다. 너그럽게 아량을 베푸는 사회가 아니다 보니, 용서받은 경험이나 실수를 포용받은 적 없는 이들은 용서할 줄도 모른다. 김새론의 일거수일투족에 기사가 쏟아졌지만, 그가 음주 운전 사고 이후 피해 상인들에게 일일이 찾아가 사과하고 보상하고, 개명까지 하며 생계를 위한 노동을 했다거나, 이를 폭로한 사람들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생활고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사후에야 겨우 알려졌다. 이 글도 결국 뒤늦게 도착한 후회와 참회에 불과하다. 부끄러운 마음과 무력함이 앞선다. 그럼에도 논의를 멈출 수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고 또 고민해야 한다. 가혹한 세계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고, 이들을 괴롭히는 것이 재미있는 놀이이자 정의 구현이라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도 사방에 울려퍼지기에.
참고: 김현경, ‘아이돌을 둘러싼 젠더화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의 문화정치학’, <한국언론정보학보>, 한국언론정보학회, 2016.
심혜경, ‘김새론: 뉴-걸 혹은 새론-소녀’, <소녀들: K-pop 스크린 광장>, 여이연, 2018.
소영현, ‘팜므파탈이라는 장치와 젠더화된 사회적 집합감정’, <한국고전여성문학연구>, 고전여성문학회, 2015.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