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오요안나 방지’ 긴급 증언대회…“폭언에도 방법 없어”
방송 노동자 A씨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제2 오요안나 사건 방지를 위한 방송 노동자 긴급 증언대회’에 참석해 힘겹게 말을 꺼냈다.
“이제 저는 저를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 방송사에서 방송작가로 일하다 해고당해 힘겨운 소송 끝에 복귀했지만 현재는 민원 처리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제 평생의 꿈이었던 작가 일을 잃었습니다.”
그는 2021년 7월, 7년간 일하던 방송사에서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았다. 회사와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인 뒤 승소해 이듬해 8월 복직했지만 작가 업무로 되돌아오지 못했다. A씨는 ‘무기직 행정지원’으로 직급 없이 콜센터 업무를 하고 있다. 연봉계약직인 무기직 행정지원은 일반직과 같은 업무를 하면서도 다른 처우를 받는다. 승진을 할 수도, 직군 이동을 할 수도, 희망퇴직을 신청할 수도 없다. 그를 부당해고로 내몬 사람들은 지금까지 아무런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
16년 동안 일하면서 단 한번도 근로계약서를 써본 적이 없다는 방송작가 B씨는 “퇴근 시간이 따로 없고, 불법해고가 가능하고, 연차·보너스·퇴직금이 전혀 없고, 부당한 업무지시도 가능하다”며 “비정규직들은 폭언, 임금체불과 같은 부당한 일을 당해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불이익은 일터 밖까지 이어진다. 근로를 증명할 수 없으므로 전세자금 대출이나 청년우대통장 개설도 막혀 있다. B씨는 “완벽하게 사회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지난 5년간 ‘무늬만 프리랜서’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왔지만, 방송사들은 책임 회피를 위한 꼼수를 쓰고 있다. 초기엔 계약서에 “어떠한 경우에도 고용관계를 주장할 수 없다”거나 “어떠한 민형사상의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 등 조항을 넣었다. 사무실에 고정석을 없애고, 출퇴근 시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못하도록 하는가 하면 카카오톡을 통한 업무지시 금지 등 지침을 세우기도 했다. 이런 문제가 지적되자 휴가, 상여금, 승급제도, 임금체계 등에서 차별을 둔 ‘방송지원직’이라는 직군을 신설했다. 파견 근로 1년+파견 연장 1년 등 직접고용을 피하는 꼼수도 만연했다.
진재연 엔딩크레딧 집행위원장은 “오요안나씨의 죽음은 너무나 비극적이지만 방송 현장의 대다수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에게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라며 “현장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대우와 차별들을 보면 ‘신분제’라는 말이 과하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