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쓰고 달콤한 경제]사이클도 없는 내수의 구조적 침체가 걱정이다](https://img.khan.co.kr/news/2025/02/27/l_2025022801000836100087981.jpg)
한국은행이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1.5%로 낮췄다. 아울러 한국은행 총재는 ‘1%대의 성장이 한국 경제의 실력’이라고 말했다. 1%대 성장은 낯설다. 2023년에 한국 경제는 처음으로 1%대 성장률을 경험했다. 2023년 1.4% 성장,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1960년대 이후로 보면 역대 다섯 번째로 낮은 성장률이었다. 2023년보다 낮은 성장률이 과거 네 차례 있었으니, 당연히 역대 최악의 경기침체는 아니었다. 언뜻 떠올려봐도 대기업과 은행이 대거 파산하면서 실업자가 쏟아져 나왔던 IMF 외환위기 때가 요즘보다 훨씬 어려웠다.
저성장은 어느 정도는 적응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두 가지 점이 걱정이다. 먼저 한국 경제의 복원력이 역대 최악의 수준까지 악화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GDP 성장률에는 기본적으로 ‘기저효과’가 작동한다. 전년과 비교한 당해년의 경제규모 변화를 측정하기 때문이다.
2023년의 1%대 성장률은 역사적으로 매우 낮은 성장률이었지만, 2024년의 성장률은 2.0%로 가까스로 1%대 성장을 면하는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올해 1%대 성장이 예상되고, 절대수치 자체는 큰 의미가 없지만 2026년 성장률 전망치도 1%대다.
과거 한국 경제가 보여준 회복력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최악의 경기 후퇴였던 IMF 외환위기를 맞은 1998년의 성장률은 -5.1%였지만, 이듬해인 1999년의 성장률은 11.5%였다. 이젠 1%대 성장률이 연이어 기록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대의 저성장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이미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다.
‘부채’ ‘건설투자’ 두 개 찬스 다 써
취약한 복원력도 문제지만, 더 걱정스러운 건 내수의 장기 침체이다. 순환적 경기 사이클로 보면 한국 경제는 작년 4분기부터 수축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달리 말하면 작년 3분기까지는 경기가 확장세를 나타냈다는 의미지만, 당시에도 경기 회복의 온기를 느꼈던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것 같다. 한국의 경기 흐름은 거의 전적으로 수출 사이클에 좌우되고 있다. 수출이 회복될 때 경기는 확장되고, 수출이 둔화되면 경기도 둔화되지만, 내수는 늘 안 좋다.
한국 내수는 장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두 가지 찬스를 이미 사용했다. ‘부채’와 ‘건설투자’가 그것들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민간부채 증가율은 명목GDP 성장률을 구조적으로 웃돌았다. 어느 국가 경제나 부채 찬스를 활용할 수 있다. 미래의 경제활동을 담보로 차입해 현재의 용처에 활용하는 건 색안경을 쓰고 볼 일이 아니다. 문제는 부채를 한없이 늘릴 수 없다는 데 있다.
특히 2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와 관련해서는 딱히 용한 대책이 있을 수 없다. 가계부채 증가율이 명목GDP 증가율 이상으로 늘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민간소비 침체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가계의 소비를 측정하는 지표인 소매판매는 작년에 2.2% 감소했다. 카드위기가 있었던 2003년 이후 가장 큰 폭의 감소였다.
최근 수년 동안 늘어난 가계부채의 상당 부분은 주택 구입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주택 투자에 쓰인 자금은 소비의 관점에서 보면 매몰 코스트에 가깝다. 한국에서는 주택 가격이 상승하더라도 미국처럼 이를 유동화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주택 가격이 상승해도 부동산에 묶여 있는 돈이 흘러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반면 금융기관에 내야 할 원리금 부담은 크기 때문에 가계가 쓸 돈은 늘 부족하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춰 이자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는데, 연내 1~2회의 금리 인하가 더 단행돼야 한다고 본다. 다만 이 경우라도 최근 가계부채의 절대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소비 회복을 이끈다기보다는 작년과 같은 극심한 침체를 막아주는 정도의 역할에 그칠 것이다.
정부 ‘복지성 추경’ 빨리 인정해야
한편 건설투자도 성장에 큰 영향을 주는 변수이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발전 초기에 건설투자가 성장에 크게 기여한다. 농업 노동자들이 도시에 모여 임노동자로 바뀌는 과정은 건설투자의 확대를 수반한다. 주택을 짓고, 도로를 닦고, 병원을 만들고, 학교를 건설해야 한다. 이 과정은 도시화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중국도 그렇지만, 도시화가 완성되는 시점에서 신흥국의 성장도 둔화되는 경우가 많다. 향후 5~10년 정도의 시계(視界)로 보면 한국과 중국처럼 비교적 늦게 도시화를 이룬 국가들보다는 오히려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서 건설투자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유럽의 도시 인프라는 낡고 노후화되었지만, 한국과 중국은 비교적 새것이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을 때 벌어놔야, 경기 하강기를 버텨낼 수 있는 내구력을 가질 수 있다. 한국 내수의 문제는 곳간을 변변히 채워놓지도 못한 상황에서 또다시 경기 둔화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IMF 때보다 더 어렵다’는 아우성은 내수에 관한 한 과장이 아니다.
정부는 추경 편성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현시점에서의 추경은 복지성 성격이 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한 번 쓰고 없어지는 데 경제적 자원을 쓰는 것보다 증식이 가능한, 생산적인 영역에 자원을 배분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이는 추후의 논의 과제로 넘겨야 한다. 규모가 작더라도 당장 지원이 필요한 분야에 대한 지원을 서둘러야 한다.
성숙한 경제에서 재정 투입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복지’가 아닌 ‘성장’을 위한 투자라는 명분론으로 시간을 보내기에는 요즘 발표되는 내수 지표들이 너무도 섬뜩하다. 위선을 걷어내고 본다면 자영업에 대해서도 진흥이라는 명분으로 더 이상 경제적 자원이 더 투입돼서는 안 된다.
대부분 업태에서 한국의 자영업은 투입 대비 산출의 효율을 더 이상 높이기 힘든 레드오션이 돼버렸다. 요식업과 도소매업 폐업자 수가 이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영업에 대한 지원은 사업자들의 출구전략을 도와주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