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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자로움에서 지혜로움으로

‘혜자롭다’는 편의점 도시락에 붙는 최고 수식어다. 이 형용사는 2010년쯤 배우 김혜자씨가 광고모델을 했던 한 편의점 도시락이 가성비가 뛰어나다며 누리꾼들이 만든 신조어다. 그런데 ‘혜자로운 도시락’을 실제 보면, 고기 반찬이 많다. 백종원씨가 광고모델인 다른 편의점 도시락도 비슷하다. 더 많은 고기 반찬을 차별점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래서 편의점 도시락은 늘 “영양이 불균형하고 나트륨이 과다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내가 편의점 도시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10여년 전이다. 노인들이 편의점에 와서 도시락을 구매하는 모습을 자주 보면서부터였다. 부부로 보이는 노인들도 있었다. 행복한 노년을 꿈꾸며 하루를 견디던 나에게 그 모습은 충격이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2020년 기준 40.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다. 편의점 도시락의 핵심 고객인 청년 세대 역시 가난하다. 2022년 서울연구원 조사를 보면 서울 거주 만 18~39세 청년의 86%가 경제적 또는 비경제적 빈곤 위험 상태로 나타났다. OECD 평균(2022년 기준 21.1%) 이하인 우리나라 사회보장 지출(14.8%)의 구멍을 편의점 도시락이 대신 메꿔온 셈이다.

청년과 노인뿐만이 아니다. 고물가 탓에 ‘런치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요즘에 편의점 도시락은 40~50대 중장년층이나 여성으로 수요층을 확대하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은 지나치게 달고 맵고 짜다. 반찬이 육류와 가공육에 집중된 탓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5년 소시지·햄 등 가공육을 담배와 같은 1급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게다가 도시락 1개당 나트륨 함량도 1일 권장량의 50~80% 수준이다. 당연히 칼로리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한 편의점 브랜드가 저속노화 도시락을 내놓았다. 다이어트의 대명사인 닭가슴살에 렌틸콩 잡곡밥, 샐러드로 구성된 도시락 가격은 6500원이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락을 구하기가 어렵다.

‘저속노화’ 도시락은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가 한 편의점 업체와 함께 개발했다. 정 교수는 노화를 가속하는 흰쌀밥, 밀가루, 붉은 고기(소고기·돼지고기), 가공식품 대신 통곡물, 콩, 채소 등을 섭취하면 노화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주장해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필자가 대기업의 편의점 도시락을 너무 높게 평가한다”는 비판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편의점 도시락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속도와 성과에 매몰된 우리나라 신자유주의 문화와, 양극화로 끼니를 걱정하는 가난한 청년층과 노년층의 현실을 보여주는 사회적 코드다. 우리는 이 코드가 가진 사회문화적 함의보다는 가성비와 편의성에 주로 초점을 맞춰왔다. “더 많은 가공육과 고기를 제공한다”는 자극적인 구호를 내세워서 말이다.

저속노화 도시락은 한 방향으로만 질주해온 음식 트렌드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건강과 음식의 근본적인 관계도 한 번쯤 곱씹게 한다. 이제 편의점 도시락의 최고 수식어는 ‘혜자로움’이 아니라 ‘지혜로움’으로 바뀌어야 한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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