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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와 남기호씨

새벽에 빗자루질을 하려 6수를 했다. 5번 떨어지고 6번 만에 붙었다. 32세 때 첫 도전을 했다. 6명 뽑는데 105명 남짓이 지원했다. 시험 과목은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배근력, 멀리뛰기.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는 둘 다 1분 62개 이상. 배근력은 180㎏을 당겨야 한다. 만점이 2.75m인 멀리뛰기는 점수제로. 8개월간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헬스장에서 살며 홀로 혹독한 훈련을 했다. 체력 시험 통과. 그러나 결과는 불합격. 재수를 선택했다.

1982년생인 그때 내 나이 32세, 딸이 3세. 아내와 딸을 위해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 직업이 절실히 필요했다. 재수가 3수, 4수, 5수로 이어졌다.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졌다. 5수 도전도 실패.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네.’ 울산이 고향인 아내가 내게 말했다. “울산으로 내려갈까? 조선소에 취직하는 건 어때?” 나는 6수를 결심했다. 36세. 기적이 일어났다. 그토록 바라던 환경공무관이 된 날, 나는 지구도 껴안을 수 있을 만큼 길어진 팔로 아내를 힘껏 끌어안았다.

꿈? 고등학교 2학년 때, 막연히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다. ‘편지’라는 제목의 대본을 구해 혼자 1인2역 연기 연습을 하던 나. 눈 깜짝할 새 세 아이의 아빠가 된 나는 야광 조끼를 입고 빗자루로 새벽 거리를 쓸고 있다. 거리와 골목을 쓸고, 쓰레기를 줍고…

천직. 6수 후, 빗자루질을 한 지 3년째 되던 해 깨달았다. 처음에는 지저분한 일로 생각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빗자루질을 하며 지나온 자리를, 청결해진 거리를 문득 별생각 없이 뒤돌아볼 때마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잔잔하지만 진한 감동과 뿌듯함.

새벽 5시, 저절로 눈이 떠진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자. 아이들 생각해서 다치지 말자.’ 다짐을 하고 몸을 이완시키는 스트레칭을 한다. 몇달 전 광주에서 환경공무관이 새벽 작업 중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새벽에는 차들이 세게 달린다. 도로 가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는 비닐에 어떤 날카로운 게 들어 있을지 모른다. 칼, 바늘에 찔리는 사고가 꽤 자주 일어난다. 나도 칼에 손이 베인 적이 두 번 있다. 세수를 하고,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자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이 깨지 않게 나는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고 닫는다.

새벽 6시부터 오전 11까지,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나는 내가 맡은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고 쓴다. 매일 하는 빗자루질. 나는 빗자루질에, 쓰는 행위에 몰두한다. 지루하지 않다. 매일매일 빗자루질을 하며 느끼는 기분은 매일매일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오늘 빗자루와 내일 빗자루가 다르고, 오늘 빗자루질과 내일 빗자루질이 다르니까. 똑같은 거리지만, 똑같은 거리가 아니니까.

늘 그곳에 있는 거리의 풍경은 매일 달라져 있다. 계절에 따라, 절기에 따라, 날씨에 따라. 바람이 시시각각 다르고, 햇빛의 투명함 정도가 다르고, 떠 있는 구름의 모양이 다르고, 들려오는 소리들도 다르다. 사방이 트인 곳에서 오롯이 그날의 날씨를 느끼며, 혼자, 무념무상 빗자루질을 한다. 손목이 아프고 쓸어도 쓸어도 줄지 않는 낙엽 때문에, 거리를 지우는 눈 때문에 지칠 때도 있지만 빗자루질이라는 행위는 할수록 날 매료시킨다. 게다가 하고 나면 더 좋은 결실이 분명한 행위다. 그리고 누군가는 해야 한다.

내게 빗자루는 군인으로 치자면 총과 같다. 나는 내 빗자루를 내 손으로 만든다. 내 몸 사이즈에 맞게, 빗자루질을 할 때 팔과 손목에 무리가 덜 가게, 최대한 가볍게. 그래서 낚싯대를 손잡이로 쓴다. 내가 만든 빗자루가 아닌 다른 빗자루로 빗자루질을 하면 느낌이 안 산다. 한 달을 채 못 쓰는 빗자루, 가을에는 사나흘밖에 못 쓰는 빗자루. 모두 내 손에서 탄생한 빗자루이지만 똑같은 빗자루는 하나도 없다. 닳아 있는 빗자루를 보면 ‘열심히 쓸었네’.

난 짬뽕, 짜장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가장 어려운 사람. 그런데 아내와 6수를 선택하는 데는 좁쌀만큼의 망설임도 없었다. 부모님의 근심이자 철부지이던 나는 아내를 만나고 변했다. 내 입에서 욕설이, 거짓말이, 불평이 사라졌다. 나는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 아내와 아이들 위해서 산다. 그런데 곰곰 생각하니 그게 나를 위해 사는 것.

새벽 7시, 빗자루질을 하는 내 등 위에서 동이 트고. 문득 뒤돌아다보며. ‘아, 좋다’.

김숨 소설가

김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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