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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되기를 거부할 때

갓 대학생이 된 어느 봄날이었다. 누군가 넌지시 “너는 우파야, 좌파야?”라 물어온 적이 있었다. 스무 살의 나는 “그런 경계는 이제 사라질 때가 되지 않았나요?”라며 넘어갔었다. 정확히 20년 전 이야기다. 그렇게 가르마 타기를 거부했던 것 치고, 이후의 나는 변수에 따라 비슷한 것을 묶고 나누는 기계학습 연구를 진행했고, 레이블러들이 데이터에 이름을 더 정교하게 붙일 수 있도록 만드는 도구 디자인에 대한 논문을 썼으며, 남들처럼 MBTI 신봉자가 됐다.

사실 분류가 피해야만 하는, 해로운 행동인 것은 결코 아니다. 지식 피라미드, 일명 DIKW 모델에서도 그 첫 다리를 놓는 것이 분류였다. 1980년대에 소개된 이 모델은, 가공되지 않은 데이터(Data)가 맥락에 따라 분류되면서 정보(Information)가 되고, 정보가 분석을 거쳐 지식(Knowledge)이 되며, 여기에 통찰이 더해져 지혜(Wisdom)로 변환되는 과정이다. 단순한 관측값과 신호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비슷한 개념들끼리 묶고 나누는 과정이, 비로소 지식으로 나아가는 첫 행동인 셈이다. 이 개념에서라면 다층다면적인 데이터의 특성을 훨씬 더 고차원적으로 분류하는 현재의 알고리즘 기술이, 지식과 지혜의 창발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은 퍽 당연한 수순이다.

이처럼 기준에 따라 끼리끼리 묶어내는 것은 시장 관점에서도 무척 효율적이다. 인구학적 정보를 활용해 적당히 분류하고 쇼핑 리스트를 추천하면 랜덤일 때보다 더 나은 매출이 나온다. 물론 마케팅으로 구매 행동이 발생했을 수도 있고, 손쉬운 결제법으로 매출이 올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요소는 알고리즘적 유도다. 알고리즘이 지속적으로 특정 상품군을 추천해서 나의 성향과 행동을 미묘하게 조정하는 듯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마치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 클릭 패턴을 학습해 점점 치우친 콘텐츠를 추천하고, 그에 따라 내 성향도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효율적으로 내가 분류체계 안에서 설명될 수 있고, 효과적으로 내가 소비되는 세상에서, 맥락 해석을 기가 막히게 해내는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은 한층 더 다른 소비 행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딩크족에게도 어김없이 육아용품을 노출하는 기존의 방법론과 달리, 나의 발화를 더 섬세하게 이해하고 의도를 파악해 더 뾰족하게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다. 시장이 충분히 커지고 상품이 더 다양해진다면, 적당한 수준의 상품 추천으로는 도무지 지갑이 열리지 않는, 더 뾰족한 맞춤형의 무언가를 요구하는 행동이 많아질 거라고 본다. 모두가 그리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꼭 같은 패딩 재킷을 입지 않게 되는 것이다.

기술이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고, 사람들의 요구가 세상을 바꾸는 시절이다. 그러나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재의 한국 사회는 자꾸만 기존의 방식대로 사람을 이대남, 극우세력, 개딸, 종북좌파, 중도층 같은 분류 박스에 털어 넣으려 노력한다. 해석하기에 효율적이고, 몰아가기에 효과적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런데 혹여 누군가 그어둔 분류의 기준선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모든 분투의 과정이 지혜로 이어지는 창발의 흐름이기를 바라지만, 20년 전보다 더 분류되기를 거부하고픈 요즈음이다.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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