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시간이다. 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로 완전민주국을 졸지에 흠결민주국으로 만든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심판이 곧 종결된다. 진정 어린 반성보다는 거짓과 궤변의 선동을 택한 내란죄 피고인 탓에 나라가 두 동강 났다. 광장의 기세로 세계가 목도한 내란 시도를 호수 위 달그림자로 만들 수 있다고 아직도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헌법이 왜 헌재에 대통령의 파면 여부를 결정할 권한을 부여했는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제 헌재 재판관들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는 일만 남았다.
지금이 헌재의 시간임을 부정하는 헌재 흔들기가 계속 시도되고 있어 우려된다. 특히 법학계의 원로라는 사람마저 나서서 부화뇌동하는 것을 보면 걱정을 넘어 개탄스럽다. 헌법 해석은 학술적으로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정파적 편견에 입각한 자의적 해석을 전문가적 견해인 양 혹세무민해서는 안 된다. 정파적 주장을 대중선동용으로 신문광고까지 해대는 세태에는 분노까지 치민다.
탄핵심판은 신분이 강하게 보장되는 공직자들에 대한 특별 징계 절차다. 법 위반을 따지고 증거에 입각해야 하는 기본원칙은 일반재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징계 절차여서 그 직에서 파면하는 데 그치고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는 절차는 별도로 있기에 형사 절차처럼 최고도의 엄격성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동안의 탄핵 사건에서 확립된 법리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비상계엄 선포나 포고령 발표, 국회나 선관위에 대한 군병력 투입과 같은 객관적 사실이 너무나 명백해 엄격한 증거조사의 필요성이 작은 사례다. 오히려 헌정의 중핵적 기관의 권한이 정지되고 있으므로 최대한 신속하게 재판하는 것이 당사자에게도 필요하다. 이를 두고 형사소송법의 증거법칙을 그대로 적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헌재가 헌법 위에 군림한다는 둥 막말을 하는 것은 법 전문가가 해서는 안 될 선동일 뿐이다.
수사서류 송부촉탁, 검찰조서의 증거 채택 등도 헌재법에서 “헌법재판의 성질”에 따라 자율적으로 관계 법령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 사실관계의 확인 절차로 필요한 증거를 헌재 규칙이나 판례에 따라 확보한 것이어서 시빗거리가 못 된다. 이미 확립된 법리마저 부정하며 시시콜콜 절차를 두고 선동하는 것은 정작 사건의 실체인 법 위배의 중대성이 너무 명백하다보니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으로 벌이는 몽니에 불과하다.
가장 무도한 것은 재판관의 인신을 공격하는 행태다. 스스로가 법 전문가의 법적 논변이 아니라 정파적 입장에 따른 궤변임을 보여주는 만행이다. 원래 탄핵심판의 구체적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의회와 같은 정치기관에 탄핵결정권을 준다. 재판소와 같은 사법기관이 맡거나 탄핵심판소처럼 준사법기관이 맡는 경우에도 그 구성은 정치적 다원성을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다.
헌정사는 우리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제헌헌법에선 위헌심사기관인 헌법위원회와 별도로 탄핵재판소를 두면서 선거직인 부통령이 재판장을 맡고 대법관 5인 외에 국회의원 5인이 심판관이 되었다. 현재처럼 탄핵심판권을 헌재가 맡은 제2공화국의 경우에도 심판관은 대통령, 대법원, 참의원이 각 3인씩 선임하면서 2년마다 3인씩 개임하도록 했다.
이 모든 것이 정무직 혹은 고위직 공무원에 대한 징계가 가지는 정치적 성격을 고려해 탄핵심판에 정치적 다원성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현행 헌법은 이런 전통과 탄핵심판의 본질에 입각한 구성 방법을 채택해 재판관을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3분해 관여토록 했다. 이런 헌법의 결단과 탄핵심판의 본질을 고려하지 않고 이른바 야당이나 전임 대통령이 임명한 재판관에 대한 인신공격을 마다하지 않는 태도는 탄핵심판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윤 대통령이 실질적이든 형식적이든 임명한 모든 재판관은 심판에 관여해도 되는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민주공화국은 오로지 헌법이 정한 대로 하면 된다. 우리의 약속인 헌법이 헌재 재판관의 입으로 말하게 하라. 헌법이나 계엄법이 정한 절차는 아랑곳없이 국회를 반국가세력으로 단정하고 선관위를 선거부정의 진원지로 몰아 군병력을 투입해 국헌을 문란한 행위를 국민에 대한 경고일 뿐이라고 뻔뻔하게 떠벌리는 사람에게 다시 그런 권한을 행사할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민주공화국 헌법의 뜻일지.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