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솔리니부터 트럼프까지 20세기 이후 스트롱맨 다뤄
유토피아에 대한 향수 활용하고 국가 위기 공포심 키워 정권 획득

푸틴(왼쪽)과 베를루스코니. 글항아리 제공
극우, 권위주의, 독재
루스 벤 기앳 지음 | 박은선 옮김 | 글항아리 | 552쪽 | 2만8000원
2019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와 당시에는 물론이고 지금도 헝가리 총리를 지내는 빅토르 오르반이 만났다. 트럼프는 오르반에게 말했다. “우린 꼭 쌍둥이 같군요.”
“우락부락한 얼굴과 육중한 몸집”은 표면적 유사성에 불과하다. 이들의 본질적인 공통점은 둘 모두 독재를 사랑하는 ‘스트롱맨’이라는 데 있다.
뉴욕대 역사학과 교수 루스 벤 기앳이 트럼프 집권 1기 마지막 해였던 2020년 출간한 <극우, 권위주의, 독재>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부터 미국의 트럼프까지 20세기 이후 등장한 스트롱맨들의 특징을 살핀 책이다.
주된 논의 대상은 무솔리니, 나치 독일의 히틀러, 스페인의 프랑코, 리비아의 카다피, 칠레의 피노체트, 콩고의 모부투,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러시아의 푸틴, 트럼프다. 이외에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필리핀의 두테르테, 인도의 모디, 헝가리의 오르반도 언급된다.
저자에 따르면 이들은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등에서 강한 유사성을 나타냈다. 뿐만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역할 모델이 됐고, 일부는 ‘브로맨스’ 수준의 유대를 자랑했다.

무솔리니. 글항아리 제공
무솔리니는 “민주주의를 독재 정권으로 탈바꿈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세력은 1921년 선거에서 고작 0.4퍼센트를 득표했지만, 좌파의 지배를 두려워한 조반니 졸리티 총리의 국민블록과 손잡으면서 의회에 입성했다. 뒤이어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파시스트 세력과의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 1922년 10월 무솔리니는 총리에 임명했다. ‘독일의 무솔리니’ 히틀러도 보수파 정당의 도움으로 집권했다. 보수파 정치인들은 독일 공산당의 인기를 억누르기 위해 나치의 폭력 행위를 용인했고, 정치적 교착 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내전을 우려한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1933년 1월 히틀러를 총리에 임명했다. 반면 모부투, 카다피, 프랑코, 피노체트는 합법적 선거가 아닌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다. 에르도안, 푸틴, 베를루스코니, 트럼프 등은 무솔리니나 히틀러처럼 합법적 선거로 권력을 잡았다.

히틀러. 글항아리 제공
이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스트롱맨들은 “유토피아, 향수, 위기”를 활용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과거의 “때묻지 않은 완전한 공동체”를 회복하겠다는 약속으로 환심을 사고, 국가가 위기에 처했다는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권력을 획득한다. 다른 민족이나 다른 인종의 위협은 스트롱맨들이 시대를 막론하고 사용해온 전략이다. 자신만이 위대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는 프로파간다를 통해 개인 숭배 문화를 구축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공통점이다.
스트롱맨들의 프로파간다에서는 ‘정력’을 과시하는 마초 성향이 발견된다. 카다피, 베를루스코니, 트럼프, 두테르테는 자신의 성적인 능력을 과시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 푸틴은 걸핏하면 상반신 벗은 사진을 공개했다. 저자는 “그들이 남자다움 및 다른 남성 지도자들과의 유대를 과시하는 것은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 국내에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고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한가지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푸틴이 개를 무서워하는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면서 대형견을 풀어놨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스트롱맨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줬다. 나치가 정권을 잡기 전 히틀러는 당 내부에서조차 ‘무솔리니 중독’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무솔리니를 흠모했다. 무솔리니에게 사진을 보내라고 요청하는가 하면 책상 위에는 무솔리니의 흉상을 올려놨다. 팔을 앞으로 쭉 뻗는 나치식 경례도 무솔리니를 모방한 것이다. 트럼프 추종자들이 말하는 백인 소멸 음모론의 뿌리는 무솔리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백인 인종 전체, 우리 서양인들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증식하는 유색인종에 의해 잠식될 수 있습니다.”(무솔리니 1927년 연설) 남미로 망명한 나치 고위 간부들은 피노체트의 조언자 역할을 했다.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는 피노체트의 역할 모델이었다.

카다피. 글항아리 제공
미국은 독재가 세계 곳곳에서 성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20년대 미국 은행들과 언론은 무솔리니 독재를 지지했다. 아옌데의 국유화 정책에 놀란 미국이 CIA를 동원해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지원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쿠데타로 집권했든 선거로 집권했든 스트롱맨의 몰락은 정권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철회될 때 시작된다. 저항은 견고해 보이는 체제에 균열을 내는 망치 구실을 할 수 있다. 저자가 독재에 조용히 저항한 이들의 사례에 한 챕터를 할애한 까닭이다. 리비아 수용소의 조리사였던 후세인 알샤파이는 1996년 반란으로 학살당한 사람들의 숫자를 15년 동안 기억했다. 스페인의 한 농부는 내전 기간 중 처형된 1000명이 넘는 사람의 죽음이 기록된 공책을 40년간 보관했다.

트럼프. 글항아리 제공
저자는 중국의 시진핑은 논의에서 제외했다. 스트롱맨들의 등장을 민주주의의 붕괴라는 맥락에서 살피기 위해서라는 게 그 이유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나 인디라 간디 전 인도 총리 같은 여성 지도자도 나오지 않는다. 저자는 서문에서 “물론 이 여성들 중 일부가 독재자적 특성을 보이거나 소수 인구에 대해 탄압 정책을 펼치기도 했지만, 민주주의 자체를 붕괴시키려 했던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