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전력 옛 경영진 무죄 확정 선고에
구사노 재판관 “보고의무 소홀로 유죄 여지”
NHK “이례적 보충의견”

실제 2011년 3월 원전 폭발사고가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는 지금도 방사능 피해가 심각하다. 이듬해 현지 기자들이 방호복을 입고 사고 원전을 취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원전을 운영한 도쿄전력의 옛 경영진들이 무죄를 확정받은 가운데 일부 최고재판소 재판관이 유죄로 볼 여지도 있었다는 취지로 보충의견을 내 주목된다.
7일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구사노 고이치 최고재판소 재판관은 도쿄전력 옛 경영진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 판결 보충의견에서 “도쿄전력은 장기평가에 근거한 쓰나미 추정 결과를 국가에 보고할 의무를 2년 10개월 이상 게을리 하다가 쓰나미 발생 4일 전에야 보고를 했다”며 “보고 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로 범죄 성립 여부를 논할 여지도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충의견이란 재판부 결정 내용과 이유에 동의하면서도 추가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앞서 최고재판소는 무토 사카에 전 부사장과 다케쿠로 이치로 전 부사장 등 도쿄전력 옛 경영진 2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지난 5일 확정했다. 만장일치 판결로 구사노 재판관도 무죄 선고에 동의했다.

구사노 고이치 일본 최고재판소 재판관. 일본 재판소(법원) 홈페이지 갈무리.
그러나 보고 과실이 공소 사실에 포함됐다면 유죄로 선고될 수도 있었다고 구사노 재판관은 밝혔다. NHK는 “최고재판소 재판관이 공소사실과 다른 내용을 거론해 범죄의 성립 여부를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사건의 흐름을 시간순으로 보면 구사노 재판관 주장 취지가 명확히 드러난다. 2002년 7월 일본 정부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본부)는 ‘장기 평가’ 예측을 통해 후쿠시마 포함 인근 해역에서 쓰나미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이를 근거로 2008년 3월 원전에 최대 15.7m 높이의 쓰나미가 덮칠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예측치를 내놨고, 회사 토목 부서는 방파제 설치 등 계획을 검토했다.
하지만 경영진은 비용 부담 등의 이유로 후속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도쿄전력은 대형 쓰나미 발생 가능성을 오랫동안 숨기다가 사건 발생 4일 전인 2011년 3월7일에야 정부 원자력 담당 부서에 보고했다.
피해자 측 변호인단은 경영진이 방파제 설치 등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에 주목해 이들에게 사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법원은 본부 추정치가 장기 평가로서 신뢰도가 약해 쓰나미 예측 가능성이 낮았고, 경영진이 이를 근거로 원전 가동을 중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란 점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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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구사노 재판관은 “만약 피고인들이 신속히 정부에 보고했다면 국가는 쓰나미 방호조치를 명령하고, 쓰나미 습격시 원전 내 모든 원자로의 가동을 중단해 (비극적) 결과를 피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구사노 재판관은 “국가와 도쿄전력을 규율하는 법제도를 바탕으로 구 경영진이 어떤 행동을 취했어야 했는지를 밝히고,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반성하는 것이 대법관에게 맡겨진 직무상 책임”이라며 보충의견 취지를 설명했다. 요미우리신문은 구사노 재판관이 오는 21일 정년 퇴임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