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이 원양어선에 올랐다. 2년 전 일이다. 전세사기 피해로 인한 빚을 갚기 위해서였다. 전세사기특별법 발의 한 달 전 경매가 완료되면서, 그는 공식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일렁이는 배 위에서 멀미를 삼키는 동안 그에게 가해한 공인중개사는 영업을 이어갔다. 2년이 흘러 다시 밟은 한국 땅에는 새로운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청년은 멀미가 계속되듯 어지러웠을 테다. 전세사기는 현재진행형이다.
2월 광화문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전세사기 피해로 목숨을 끊은 첫 번째 희생자의 2주기 추모제였다. 첫 죽음 이후 7명의 부고가 이어졌다. 윤석열의 거부권 행사에도 피해자들의 희생과 절규로 전세사기특별법이 제·개정되었다. 그러나 2023년 6월부터 시행된 전세사기특별법은 한시법으로 올해 5월 만료를 앞두고 있다.
2024년 12월 기준 특별법을 통해 인정된 피해자는 2만5000여명이다.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도 약 1만건인 점을 미뤄보면 사각지대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가구, 공동담보 피해자, 외국인이 대표적인 사각지대로 꼽힌다.
피해자들의 지난한 요구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피해 주택을 공공 매입해 피해자들에게 차액을 지급하도록 법이 개정되었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고, 경매 차익이 적으면 실제 피해금을 충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한다. 피해자들은 최우선변제금(보증금의 약 30%) 수준의 최소 보장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한다. 특별법만으로는 미진한 예방 대책 탓에 세입자들은 월세로 쏠린다. 전월세 거래 중 월세 비중은 53.9%로 2020년 29.5%에 비해 2배 가까이로 늘었다. 그러나 전세사기는 피했을지언정 월세 급등으로 주거난은 심화하고 있다.
누구나 집은 필요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살 만한 집을 구하는 길은 도처에 함정이다. 임대인의 이익만을 수호하는 공인중개사, 세입자 권리 보장에 소홀한 정부, 대출이자로 이윤은 취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은행 사이에서 이 함정을 피하는 일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 된다. 국토교통부는 전국 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전세사기 예방 교육을 실시했다. 교육은 유용하겠으나 안타깝게도 그것으로 전세사기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경험이 없다 보니 덜렁덜렁 계약했던 부분이 있지 않을까”라며 전세사기를 피해자 탓으로 돌렸던 박상우 국토부 장관의 실언에 맞서 우리 사회는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전세사기특별법은 전세사기가 사회의 책임이라는 최소한의 합의다. 미약한 법이지만 피해자들이 간절히 매달리는 이유다. 타인의 삶과 목숨을 담보로 하는 투기가 용인되는 사회, 비대칭적인 임대차 구조, 집이 없으면 못 사는데 집 때문에 못 살 지경인 사회를 바꿔내자고 피해자들은 말한다. 전세사기는 계속되고 있다. 전세사기특별법을 개정하라.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