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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이후

얼마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결혼에 관한 글을 읽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가져왔다는데 실제인지 꾸며낸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다만 그 밑에 달린 댓글들로 짐작건대 한국 사회 어딘가 있음직한 일은 분명해 보였다.

글쓴이는 ‘우리집은 가난과 서민 그 어딘가쯤’이라 소개하며 글을 시작했다. 글쓴이의 누나는 서른한 살로 지난해 괜찮은 공기업에 취업했다. 부모님은 공기업에도 들어갔으니 좋은 남자 만나서 빨리 결혼을 하라 했고, 글쓴이도 누나가 좋은 외모까지 가졌기에 금방 결혼을 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누나는 부모님 앞에서 결혼을 안 하겠다고 선언한다. “부모님이 지원도 못 해줘서 대출 아직도 갚고 있고, 서른 넘었는데 모아놓은 돈도 없고, 부모님 노후준비도 안 되어 있고 물려받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글쓴이의 누나는 “비슷한 남자 만나서 결혼하기 싫고 더 잘난 남자 만나서 결혼하기도 싫다”며 “결혼은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에 가깝다”고 차분하게 말한다. 이 말을 들은 부모는 아무 말도 못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글쓴이가 “왜 그러냐(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냐)”고 묻자 누나는 “언젠가 해야 했던 말”이라고 답한다. 글쓴이는 “나도 스물 끝자락인데 해외여행 한 번도 못 가봤다. 집에 생활비 50만원씩 드리고 있다”며 “나도 결혼을 포기해야 하냐”고 묻는다.

댓글 중에 이 글의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저런 환경에서 결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또는 결혼을 하는 게 맞느냐 틀리느냐를 이야기했다. 그중에 이런 댓글이 또 눈에 띄었다. “가난이 무서운 게 밥 못 먹어서 배고픈 것도 큰데 사고의 폭이 배고파지는 거 같음.” 이게 무슨 의미일까 생각하는데 친절하게 바로 밑에 댓글이 또 달렸다. “모든 걸 돈으로 치환해서 생각하니까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던 댓글이 충격적이라 아직도 잊히지 않음.”

지난해 12월3일 밤 이후 한국 사회에는 마치 ‘블랙홀’이 생긴 듯했다. 뉴스를 다루는 일을 하다 보니 석 달이 넘도록 비상계엄과 그로 인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 과정이 모든 의제를 다 빨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중에 저 글을 봤다. 그리고 생각했다. ‘불의한 권력자를 끌어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세상을 바꾸는 일은 아니겠구나.’

석 달 전 너무도 충격적인 일이 발생해서 잠시 잊었을 뿐 한국 사회는 지금 아주 빠른 속도로 소멸의 길을 달리고 있다. 지난달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인구동향조사 출생·사망통계(잠정)’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5명이다. 2023년의 0.72명보다 0.03명이 늘어났지만 ‘반등’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다. 2.1명은 되어야 현 인구 수준이 유지되고 이보다 낮으면 줄어든다. 그런데 한국은 1명도 되지 않는다. 2018년 0.98명으로 처음 1명 선이 무너진 이후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수직 낙하 중이다. 이 정도면 한국인들이 ‘출산 파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된다.

이렇게 사람이 귀한 사회에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은 줄어들지 않는다. 지난해 한국에서 자살한 사람은 2011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많았다. 연합뉴스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과 통계청 자료를 종합해 계산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2월 ‘고의적 자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1만4439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하루 40명 가까운 사람(39.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24년 자살 사망자 수 잠정치는 2023년 확정치(1만3978명)보다 많다. 2년 연속 전년보다 늘었다, 자살자 수가 역대 최고로 치솟았던 2011년(1만5906명) 이후 13년 만에 가장 많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를 뜻하는 자살률도 28.3명으로 추정돼 2013년 이후 최고치다. 정부는 2023년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을 발표해 10년 안에 자살률을 2022년의 절반으로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되레 더 멀어졌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결정 선고일이 임박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하리라 전망한다. 그러면 두 달 뒤에는 조기 대선이 열리고, 아마도 정권이 바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끌어내린다고 세상이 단숨에 바뀌지는 않는다. 새로운 권력자를 뽑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제는 차분히 사회를 바꾸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홍진수 사회부장

홍진수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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