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고시원](https://img.khan.co.kr/news/2025/03/09/l_2025031001000189700022881.jpg)
찬장의 그릇처럼
빈방을 채워가는 거미줄처럼
벽지에 눌어붙은 살냄새
아무런 이유도 없이 놓였습니다 소년은
신문으로 창문을 만들어보다가
입구를 찾는 날벌레처럼
머뭇거리며
연습장 한 권을 쓰지 못하고
창틀과 형광등의 차원에 놓인
나방처럼
한 사람이 살던 방으로 날아와
빈 육체를 포개봅니다
정우신(1984~)
고시원에 누군가 소년을 두고 갔다. 시인은 그 소년에 대해 “찬장의 그릇”처럼 “놓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소년은 “신문으로 창문을 만들”고, “입구를 찾는 날벌레”가 되어 날아갈 꿈을 꾸지만, 이 습하고 눅눅한 곳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다. 이 좁은 방에는 해가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고시원은 이제 고시생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임시로 묵는 곳이기도 하다. 작은 방들이 밀집된 공간에서 최소한의 생활만을 겨우 유지할 수 있는 곳, 얇은 벽 때문에 여러 소음이 뒤엉켜 유령처럼 나방처럼 둥둥 떠다닐 것만 같은 곳이다.
오래전 고시원에서 고시 공부하던 사람들은 지금 법복을 입고 진실의 추를 흔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추는 진실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암흑의 세계 쪽으로 기울어진 추는 재앙처럼 우리 가슴을 치고 있다. 그 잘못된 추가 오늘도 소년들을 계속 불안한 고시원에 놓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