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등학교 1학년 학생부터 전면 적용된 고교학점제로 새 학기 교육 현장이 어수선하다. 학교와 교사는 준비가 덜 됐고, 학생과 학부모는 정보 부족을 호소하며 사교육으로 몰리고 있다. 10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전국 60개 일반계 고교의 자체 점검표를 보면, 60곳 중 16곳이 지난달 말까지 ‘기준 미도달 학생’을 지도하는 기본계획을 만들지 않았다. 출결 사항 등 새로운 제도 시행에 맞춰 학칙을 정비하지 않은 학교도 23곳이었다. 학생들에게 고교학점제가 무엇인지 알려줘야 할 교원 연수조차 시행하지 않은 학교도 3곳이나 됐다.
고교학점제는 학교 교육을 송두리째 바꾸는 혁신적인 정책이다. 학생의 흥미나 적성에 따라 문·이과 구분 없이 수업을 듣고 진로 선택에 도움을 받는 ‘맞춤형 교육’을 목표로 한다. 당초 2022학년도 시행 계획이었으나 준비 부족 등을 이유로 시기를 미뤘다. 그런데도 여전히 상당수 학교의 준비가 미흡하니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총 192학점을 이수해야 하는데 학업성취도가 미달하면 졸업은 어떻게 되는지, 중간에 수강 과목을 바꿔도 되는지 등 기본적인 정보조차 모르는 학생·학부모들이 태반이다.
입시 혼란도 우려스럽다. 석차 경쟁에 매달리지 말자는 취지의 고교학점제는 절대평가를 전제로 설계됐지만, 대입 내신 반영은 5등급 상대평가 체제다. 상대평가를 하면 학생들이 듣고 싶은 과목보다는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으로 몰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나마 1학년은 공통과목이 대부분이지만 본격적으로 과목 선택을 하는 2학년부터는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교육 인프라 부족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학생들이 다양한 과목을 선택하려면 학교별로 개설 과목이 많아야 하지만, 교사 수급과 시설 여건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대도시와 농어촌, 일반고와 특목고 간의 교육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이런 틈을 타 입시학원들은 “고교학점제에선 생활기록부 관리를 빨리 시작해야 한다”며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1시간짜리 고교학점제 컨설팅이 수십만원, 6개월~1년 생기부 첨삭 프로그램은 수백만원이라고 한다. 공교육을 강화하려는 고교학점제가 도리어 사교육 시장을 키우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교육당국은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해 학교 현장의 혼란과 학부모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실행해야 한다.
고교학점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