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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과 방풍

요즘은 TV 오락 프로그램에도 온통 전쟁 모드다. 춤과 노래 경연은 물론 퇴역 군인들의 힘겨루기와 요리사들의 대결까지 격렬한 전투다. 음악으로, 힘으로, 또는 맛으로 상대방을 꺾고 올라가 깃발을 쟁취해야만 한다.

그중 요리 경연은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하는 데다, 불과 칼을 다루는 종목이다 보니 더욱 치열하고 살벌하다. 그러나 그 결과물에는 모두 환호한다. 이름이 오르내린 식당 앞에 새벽부터 장사진을 이룬 손님들이 이를 증명한다.

어느 한 민족의 문화에서 음식만큼 대표성을 띠는 것도 없다. 문화이기 전에 생존과 직결되니 가장 본질적이다. 흔히 의식주라고 하지만, 그 중요도로 치자면 북한식 용어인 ‘식의주’에 동의할 분들도 많을 것이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알려진 허균도 같은 생각이었다. ‘먹는 것과 성욕은 본능이고, 더구나 먹는 것은 생명과 관련된 것’이라 했던 그가 귀양 가서도 잊지 못했던 것 역시 예전에 먹었던 맛난 음식이었다. 그가 유배지에서 쓴 글 ‘도문대작(屠門大嚼)’에 그 내용이 담겨 있다. 도문대작이란 고깃집 문 앞에서 입맛을 크게 다시면서 그 맛을 상상해본다는 뜻이다. 귀양살이가 녹록지 않았을 허균은 예전에 맛보았던 온갖 음식을 떠올리며 해배될 날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도문대작의 내용은 짧다. 음식명, 재료, 맛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대략 110가지의 음식과 재료를 나열했는데 가장 먼저 소개한 것이 방풍죽이다. 순서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간 맛본 음식 중 첫 번째로 떠오른 것이었다면 가장 인상 깊었던 음식일 것이다. 다른 음식과 달리 방풍죽은 채취 방법과 조리법, 맛 등을 나열하며 가장 길게 설명했다. “나의 외가 강릉에는 방풍이 많이 난다. 2월이면 그곳 사람들은 해뜨기 전에 이슬을 맞으며 처음 돋아난 싹을 딴다. 곱게 찧은 쌀로 죽을 끓이는데, 반쯤 익었을 때 방풍 싹을 넣는다. 다 끓으면 차가운 사기그릇에 담아 뜨뜻할 때 먹는데 달콤한 향기가 입에 가득하여 3일 동안은 가시지 않는다…”

봄철이면 바닷가에서 캐낸 방풍으로 무친 방풍나물이 우리 동네 백반집 식탁에도 간혹 오른다. 한겨울의 해풍을 견뎌낸 쌉싸래하면서도 들큼한 맛은 오래 입가에 맴돈다. 유배지는 참혹한 땅이지만, 과거를 되돌아보는 정산의 땅이기도 하다. 절망의 암흑 속에서 여명 같은 음식이었던 방풍죽. 허균에게 지난 인생을 반추하며, 여망(餘望)을 품게 했던 영혼의 음식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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