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밥도둑

농식품부 “단기비육 한우고기, 농가 채산성과 소비자 선택권 등 확대”

한우업계 “사육기간 단축으로 도체중량 줄고 근내지방 감소 등 우려”

정부가 ‘한우 사육기간 단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소를 키우는 기간을 단축하면 사료비와 인건비 등이 절감되고, 최종적으로 판매가격에도 반영돼 소비자한테도 이롭다는 것이다. 분뇨와 악취, 온실가스 배출 등 환경 유해 요인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한우농가가 ‘사육기간 단축’에 적극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사육기간을 줄이면 도체중량(도축 후 고기 무게)과 근내지방(마블링)이 낮아져 수익성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평창군 대관령 한우연구소 한우. 연합뉴스

평창군 대관령 한우연구소 한우. 연합뉴스

“단기비육 등급제 등 통해 최대 24개월까지 낮춘 한우고기 함께 유통”

국내 한우농가의 평균 사육기간은 31.6개월로, 미국·호주 등 축산 선진국 평균보다 최대 1년 가량 더 길다. 이를 장기비육이라 하고, 24개월령을 단기비육이라 표현한다. 미국과 호주는 18~24개월, 유럽연합(EU)은 20~30개월, 일본은 30~36개월이다.

11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서울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에서는 24개월령인 단기비육 한우고기를 시범 판매 중이다. 조만간 도입 예정인 한우고기 ‘단기비육 등급제’를 앞두고 소비자 반응을 보겠다는 취지다.

등급제는 사육기간을 최대 24개월령까지 낮춘 한우고기를 함께 유통시켜 농가 채산성을 높이고 소비자 선택권을 넓히자는 것이 기본 취지다. 세부적으로 1++(투플러스)와 1+(원플러스)를 하나로 통합하고, 기존 1등급은 유지하며, 2~3등급은 통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기존 5등급 체계에서 3등급으로 단순화하는 것이다. 3가지 등급은 골드·실버·브론즈 등으로 표기된다. 골드는 구이용으로, 맛과 육질에서 최고급을 의미한다. 주로 스테이크 용도인 실버는 가격 측면에서 실속형에 가깝다. 브론즈는 불고기 등 가공육에 속한다.

[경제밥도둑]한우 사육기간 31→24개월 단축…농식품부 “농가·소비자 상생” 농가 “수익성 악화·혼란 가중”

농식품부는 사육기간을 단축하면 농가 채산성과 소비자 선택권 등에서 지금보다 개선될 여지가 크다고 설명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30개월령 이상 한우에 비해 사료 급여량이 줄기 때문에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고, 이렇게 생산비가 줄게 되면 소비자도 저렴한 가격에 한우고기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한우 농가의 경영 안정과 다양한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한우의 사육방식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사육기간을 줄여도 한우고기의 1+ 등급 이상 비율이 장기비육 한우고기 비중에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농식품부가 최근 소개한 전북 고창 한우 농가의 경우, 평균 사육기간을 23~24개월로 맞춰 출하한 결과 1+ 등급 이상을 받은 한우 비중이 78.6%로 전국 평균(69.1%) 대비 9.5%포인트 높았다. 출하월령 단축을 통해 마리당 생산비는 약 136만원 절감했다. 이 농가가 사육과정에서 배출한 온실가스는 전체 한우 농가의 평균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약 14% 낮았다. 이에 따라 축산물품질평가원의 ‘저탄소 축산물 인증’을 취득한 후 현재 롯데백화점과 홈플러스 등에 한우고기를 납품하고 있다. 저탄소 축산물 인증제는 생산과정에서 저탄소 축산기술을 적용해 축종별 평균 배출량보다 온실가스를 10% 이상 줄인 농장을 인증하는 제도다.

농식품부는 사육기간을 줄이면 가축 위생과 환경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강조한다. 이 관계자는 “농가 입장에선 출하 주기가 늘어 자금 순환이 용이해지고, 뿐만 아니라 가축의 회전 주기 증가로 질병의 노출기간이 단축돼 축사 내 감염 확산 위험도 감소하게 된다”고 말했다.

2022년부터 농식품부 등과 공동으로 송아지 600마리를 대상으로 한우 사육모델을 연구 중인 박병기 강원대 교수는 “사료 급여량의 감소로 인해 장내발효로 인한 메탄가스 발생량도 줄게 된다”고 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사육기간을 30개월에서 24개월로 단축할 경우 사료비용 32%, 온실가스 배출량은 25% 안팎 줄어든다.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시민들이 한우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시민들이 한우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도체중량 400㎏ 안팎…조기출하 농가 많지 않을 것”

한우업계는 단기비육으로 인한 도체중량 감소와 근내지방 감소 등에 따른 등급 저하를 우려한다. 도체중량은 농가의 수익성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축산 주요국별로 평균 도체중량을 보면, 한국과 일본이 450㎏ 이상인 반면 평균 사육기간이 짧은 미국과 호주 등에선 300~400㎏ 정도다.

생산자단체인 전국한우협회의 서영석 정책국장은 “24개월령 한우 도체중량은 넉넉하게 잡아도 400㎏ 안팎”이라며 “손해를 감수하며 조기출하 하려는 농가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우업계는 또 단기비육 시 근내지방 등 육질의 맛과 품질 측면에서 좋은 등급을 받기 어려워 수입산과의 차별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육기간이 길수록 근내지방이 고기에 고르게 배어들어 맛이 좋아진다. 때문에 농가에서는 생산비가 늘어남에도 등급을 잘 받는 것이 이익이라고 보고 장기간 사육한다. 서 국장은 “환경적 측면에서도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조기 출하로 회전율만 높아질 뿐, 송아지를 추가 입식하게 되면 한우 총량은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우협회는 단기비육 등급제 도입에 따른 소비자와 농가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현행 등급제 내에서 사육기간을 함께 표기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서 국장은 “사육기간 단축에는 큰 틀에서 동의하나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며 “단기비육 등급제 도입에 앞서 도체중량과 근내지방 등에서 품종을 개량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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