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식품의 가치와 본질을 계승하면서 맥을 잇고 이들을 ‘식품명인’이라 칭한다. 1994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해 온 식품명인은 현재 81명이다. 전국 각지에서 명인들의 활동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중 가장 많은 식품명인을 보유하고 있는 지역은 어디일까?
답은 전라남도 담양군이다. 현재 담양이 보유한 식품명인은 6명으로, 기초단체 중 가장 많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이는 진장 분야의 기순도 명인이다. 기 명인은 10대를 거쳐 370년간 대물림해 온 씨간장을 지키며 전통장을 만들고 있다. 이 씨간장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방한 시 국빈 만찬 식탁에 올랐다. 이 간장으로 양념해 구운 한우갈비구이를 두고 미국 언론들은 “미국보다 더 오래된 간장이 메뉴로 제공됐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말 파라과이에서 한국 장담그기 문화가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되던 순간에도 작은 항아리에 담아간 이 간장을 현지에서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담양 장고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기순도 명인.
추성주 분야의 양대수 명인은 4대째 전해오는 전통주를 복원해 빚고 있다. 추성주는 담양의 옛 지명인 추성군에서 따온 것이다. 이 술은 고려시대 창건된 천년고찰 연동사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의 스님들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 빚어 마시던 곡차가 민가에 전해지며 내려왔다는 것이다. 절 주변에서 자라는 각종 약초와 불자들이 가져다준 곡식을 원료 삼아 빚었던 술로, 늙은 살쾡이도 이 술을 마시고 사람이 되었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양대수 명인은 쌀과 10여 가지 한약재로 100일 이상 숙성 시켜 추성주를 빚는다.
유영군 명인이 만드는 창평쌀엿은 조선시대 임금님 다과상에도 오를 만큼 맛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쌀엿에 비해 구멍이 많고 바삭한 식감이라 치아에 잘 붙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박순애 명인은 엿강정, 안복자 명인은 유과, 올 초 명인으로 선정된 조성애 명인은 쌀조청 분야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았다.

담양군 창평면의 전통가옥이 조성된 골목길 모습. 연합뉴스
양대수 명인을 제외한 5명의 명인은 모두 담양 창평면에 거주한다. 창평과 식품명인 사이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창평면은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이다. 느림에서 참다운 삶을 찾는다는 운동으로 1999년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시작됐다. 슬로시티로 지정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하는데 자연친화적 농업, 전통적 조리법, 고유의 문화유산 등이 보전되어야 한다. 예로부터 곡창지대였던 창평은 쌀이 풍족해 넉넉한 인심으로 유명했고 쌀로 빚은 한과, 엿, 조청 등 다양한 먹거리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의 속도보다는 느려도 고집스럽게 지키고 유지해 온 일상의 음식문화가 빛을 발한 셈이다. 담양 다음으로는 경남 하동이 5명의 명인을 보유하고 있다. 이중 박수근 명인을 비롯해 4명이 차 분야에서 명인으로 지정됐다.
한편, 광역단체별로 가장 많은 명인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전남(16명)이며 다음으로는 경기(15명), 전북(10명), 경북(9명) 순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금까지 모두 99명의 식품명인을 지정했다. 이 중 17명이 사망했고 1명은 자진 반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