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지난해 10월21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굳은 표정으로 질의를 듣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경찰이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과 관련해 지난 5일 국회에서 ‘양심선언’을 한 방심위 간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불과 한 달 전 경찰은 이 사건을 두고 “주요 참고인 조사를 마친 상태”라며 “조만간 수사 결론을 도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이 류 위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핵심 증인을 수사하지도 않고 사건을 종결하려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지난 10일 “장경식 방심위 강원사무소장(전 종편보도채널팀장)에 대해서 조사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 소장은 오는 12일 경찰에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류 위원장 민원 사주 의혹의 골자는 2023년 류 위원장이 가족과 지인을 시켜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인터뷰’를 인용한 보도들을 심의해 달라고 요청하는 민원을 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등은 지난해 1월 류 위원장을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서울 양천경찰서가 사건을 배당받아 수사를 진행해왔다.
경찰은 지난해 1월 고발인 조사를 하고 1년이 지난 1월10일 피고발인 류 위원장을 조사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지난달 10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확보한 자료와 관계자 진술 등을 종합해서 조만간 수사 결론을 도출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 5일 장 소장이 국회에서 그간의 주장을 번복하면서 경찰은 이대로 수사를 마무리할 수 없게 됐다. 장 소장은 이날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현안질의에 출석해 ‘류희림의 동생 이 2023년 9월5일 민원을 넣은 사실을 류 위원장에게 보고했나’라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민희 과방위원장의 질의에 “보고했다”라고 답했다. 장 소장은 당시 종합편성채널 민원·심의를 담당하는 종편보도채널팀장이었다. 류 위원장에게 대면 보고한 당사자의 진술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장 소장은“(과거에)사실과 다른 내용을 위원님들께 말씀드리면서 양심의 가책과 심적 고통을 많이 겪었다”고 말했다.
장 소장의 보고 여부는 이전에도 류 위원장의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을 가르는 쟁점이었지만 경찰은 장 소장을 조사하지 않았다.
김준희 방심위지부장은 “지난해 2월 양천서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을 때 수사관들에게 장 소장이 핵심 참고인이라는 점을 알렸고 경찰은 장 전 팀장을 수사하겠다고 말했다”며 “1년이 넘도록 수사 안 하고 뭐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류희림씨를 정말로 조사한 것인지도 솔직히 의심스럽다”고 했다.
방심위 노조와 시민사회단체들은 류 위원장에 대한 경찰 조사 역시 미흡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지난 6일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이 류희림을 조사한 날은 공교롭게도 류희림이 항의 농성하는 직원들을 신고하고 출동한 경찰의 호위를 받은 날”이라며 “그날 조사가 원래 예정돼 있었는지, 무슨 조사를 했는지조차 밝히지 않는 경찰이 사건을 종결한다면 범죄 은폐 공범 자처했다는 비판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류 위원장은 지난 1월10일 자신의 연봉과 민원 사주 의혹 등에 대해 항의 농성하는 직원들을 경찰에 신고했고, 이날 양천서 경찰들이 출동했다. 경찰 관계자는 해당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며 “해당 날짜에 조사할 계획이 사전에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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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류 위원장 수사는 느리게 진행하면서 개인정보유출 혐의 관련한 공익신고자들에 대한 수사는 신속하게 진행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2023년 12월 류 위원장은 자신의 민원 사주 의혹이 제기되자 “민원인 정보 유출”이라며 방심위 직원들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고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맡았다.
경찰은 지난해 1월 방심위 사무처 사무실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같은 해 9월 방심위 직원 자택 등을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 10월 포털사이트 압수수색을 했다. 지난달까지 공익신고자 등 관련자 4인은 경찰 조사를 받았다. 공익신고자 법률대리인인 최재홍 변호사는 “(공익신고자와 달리) 류 위원장에 대해선 일회성 조사만 있고 압수수색은 없다”고 했다.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 지난 6일 서울 양천구 방송회관 앞에서 ‘방심위, 권익위, 경찰은 류희림 청부민원 재조사에 즉시 나서라!’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박채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