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가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을 재조사하라고 방심위에 요구했다. 이 사건의 핵심 증인인 장경식 방심위 강원사무소장이 지난 5일 국회에 나와 위증했다고 실토한 뒤 닷새 만에 나온 조치였다. ‘2023년 9월 류 위원장 동생이 방송심의 민원을 넣은 사실을 류 위원장에게 직접 보고했다’는 장 소장 증언은 구체적이다. 그간 ‘가족 민원 관련 보고를 받은 적 없다’고 발뺌한 류 위원장을 뿌리째 흔든 결정타였다.
그럼에도 류 위원장은 묵묵부답이다. 그는 장 소장 증언 다음날인 6일과 7일 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고, 10일 방심위 전체회의에선 이 의혹에 대해 질문하는 기자들을 회의장에서 나가도록 했다. 가타부타 답 한마디 없이, 권익위까지 다시 요구한 진상 규명에 고위공직자가 시간끌기·버티기로 맞선 것이다.
또 한번 방심위에 재조사를 요구한 권익위도 무책임하긴 마찬가지다. 방심위 직원들이 ‘류 위원장의 민원 사주로 불공정 심의가 의심된다’고 권익위에 신고한 게 2023년 12월이다. 그러나 권익위는 우물쭈물하다 지난해 7월에야 이를 방심위로 송부했고,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는 방심위 조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 사건을 종결했다. 더욱이 방심위에서 이 사건을 재조사하면 류 위원장 최측근인 박종현 감사실장이 맡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는 앞선 조사에서도 위법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고 최근 인사에선 1급으로 승진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다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오죽하면 방심위 노조에서도 “박 실장이 또다시 조사에 나선다면 사건 은폐의 공범에게 다시 조사를 맡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힐난이 나왔을까 싶다.
방송 뉴스·프로그램을 심의·징계하는 방심위는 공정성과 독립성이 생명이다. 류 위원장의 민원 사주 의혹은 그 존립 기반을 흔드는 행위다.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는 핵심 증인의 고백까지 나오면서 사건의 성격은 180도 바뀌었다. 청부 의혹이 짙은 민원으로 눈엣가시 같은 방송사 징계에 나섰다는 것 아닌가. 더 이상 방심위 조사에 떠넘기지 말고, 반부패 총괄기관인 권익위가 직접 이 사건을 재조사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 나아가 신고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증거 조사 없이 지지부진한 경찰 수사도 속도를 내야 한다. 거짓말·은폐 의혹까지 더해진 류 위원장은 이 사태의 진상을 스스로 밝히고 물러나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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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지난 10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